사업주 아닌 종사자 의견 중심...소비자 선택권 보장 대책 내놔야
1990년대 초, 고등학교 단짝 친구 아버지의 직업은 택시 기사였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필자의 집보다는 사정이 꽤나 괜찮았고, 말 그대로 ‘중산층 가정’의 표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방 출장을 가거나 해외 출장을 갔을 때도, 택시 기사분들은 중요한 취재원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해당 지역의 민심을 듣고, 해당 국가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였습니다. 수입은 물론 해당 지역의 전반적인 평균 수준에 어느 정도 수렴한 직업이 택시 기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택시는 어쩌다 어느 대선 후보의 말처럼 ‘도시의 탄광’이 됐을까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하다하다 마지막으로 가는 게 택시”라는 발언으로 정치권뿐 아니라 택시업계에도 직업 비하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택시업계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해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아픈 현실을 제대로 짚은 말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 택시기사는 하루 10.8시간을 월 26일간 운행하면서 217만 원을 버는 것(2019년 기준)으로 나타났습니다. |
실제 택시 기사들의 연령이나 수입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사정은 생각보다 열악합니다. 젊은 택시 기사는 찾기 힘들고, 수입은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인 수준입니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60대 이상 서울 택시 기사는 2019년 65%에서 2021년 72.4%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40대 이하는 2019년 6.4%에서 2021년에는 4.5%로 줄어 들었습니다. 택시기사는 또, 하루 10.8시간을 월 26일간 운행하면서 217만 원을 버는 것(2019년 기준)으로 나타났습니다. 버스 기사가 하루 9시간, 월 22일간 근무하며 396만원을 버는 것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더 많은 수입을 찾아 쿠팡이나 배달의 민족 등 배달 서비스로 발길을 돌리는 택시 기사들도 많습니다. 결국, 이런 택시 산업의 사양화는 승차 거부와 난폭운전, 범죄 위험성, 안전 문제 등 승객인 국민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전가 되고 있습니다.
↑ 택시 사업자들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각종 보조금과 사업권을 받으면서도 경영이나 서비스 혁신은 외면해 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
택시업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런 택시 산업의 몰락을 정부와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이를 악용한 택시 사업자 단체(택시조합)의 오랜 공생구조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선 정부의 택시 요금 정책과 공급 총량 규제 문제입니다. 정치권과 정부, 지자체는 물가 상승을 우려해 택시 요금 현실화를 계속해서 외면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와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에 나가 택시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택시 요금이 얼마나 저렴한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택시 사업자 단체들의 후진적 경영 행태 역시 원인으로 꼽힙니다. 택시 사업자들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각종 보조금과 사업권을 받으면서도 경영이나 서비스 혁신은 외면해 왔습니다. 택시 기사 처우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사납금제는 국회 입법을 통해 폐지가 공식화 됐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택시 회사들은 사납금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십년 넘게 특정인이 수장을 맡고 있는 택시 사업자 단체 등이 지역구 의원 등 정치권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많은 교통 전문가들이 “사납금 제도를 없앤 안정된 기본월급제 시행, 젊은 층 운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인센티브 정책, 플랫폼 업체들을 통한 다양한 모빌리티의 도입 등이 필수적”이리고 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반대로, 오랜 기득권 고리를 끊고 플랫폼을 이용해 선보인 ‘벤티’나 ‘블랙’ 등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건 택시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 선거철을 맞아 현재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등이 택시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공공 택시 호출앱’ 도입 공약이나 ‘악탈적 수수료 해소’ 등의 발언은 듣기에는 시원할지 모르지만, 복잡한 택시업계의 난제를 풀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는 못됩니다. 자칫, 시장 경제질서를 무너뜨려 가뜩이나 허약한 택시 업계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포퓰리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 택시업계의 모든 문제를 ‘플랫폼 기업’이라는 외부의 적으로 돌려 내부 혁신을 지연키면서 ‘택시 기득권’만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 카카오 모빌리티와 타다 등 택시 호출 플랫폼 운영사들은 승객 수요와 택시 공급을 빅데이터와 AI로 실시간 파악해 승차 대기시간을 줄이고, 승차거부를 차단하는 강제 배차 시스템을 통해 택시 업계를 변화시키는 ‘메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사실, 소비자 관점에서 카카오 모빌리티와 타다 등 택시 호출 플랫폼 운영사들이 택시 산업 혁신에 기여한 바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승객 수요와 택시 공급을 빅데이터와 AI로 실시간 파악해 승차 대기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 승차거부를 차단하는 강제 배차 시스템을 통해 택시 업계를 변화시키는 ‘메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실제, 기사에 대한 평가 제도와 경로 요금 기록 등을 통해 택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공공 택시 호출앱 등이 그 동안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해 왔다는 것 역시 새겨볼 대목입니다. 부산 '동백택시', 수원 '수원e택시', 진주 '진주택시', 인천 'e음택시' 등 일부 지역에서 공공 택시호출앱을 선보이고 운영하고 있지만 성공적이라는 평가와는 거리가 먼 게 현실입니다. 배차, 결제 서비스 등 각종 시스템 UI 등 여려 측면에서 민간 기업이 가진 경쟁력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선호나 요구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개발하고 고도화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오랫동안 한국 교통정책을 연구해 온 김창균 모빌리티정책연구소 대표의 얘기는 그래서 귀담아 들어볼만 합니다.
“무인 자동차 도입이 가시화되는 지금, 선거철을 맞아 어떻게 돕고, 얼마
[정광재 디지털뉴스 부장 indianpa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