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를 비롯한 종이 상자에 붙어 있는 포장용 비닐테이프는 반드시 떼고 버려야 한다는 점, 요즘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상자와 함께 버려졌을 때 재활용 과정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닐테이프를 떼고 버리는 과정이 사실 불편하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종이테이프가 많이 쓰이기도 하는데요. 얼핏 생각하면 테이프와 상자 모두 종이 재질이어서 재활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 확인해봤습니다.
우선, 처음 취재를 시작한 곳은 '파지 압축장'이었습니다. 파지 압축장은 버려지는 종이를 모아서, 말 그대로 압축을 한 뒤 제지 공장으로 넘기는 곳입니다.
↑ 종이 압축장 |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수도권에서 가장 큰 파지 압축장, '평화자원'을 찾아가 봤습니다.
↑ 고영승 평화자원 대표 |
평화자원의 고영승 대표는 "종이 재질에 따라 박스와 신문, 흰 종이를 나눠 압축한 뒤 제지회사로 보낸다"고 파지 압축 공정을 설명했습니다.
종이테이프나 비닐테이프, 혹은 다른 이물질까지 종이 박스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압축장에선 분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루에 들어오는 파지 양이 너무 많아 일일이 분리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 종이 분리작업 |
압축된 파지는 제지 공장으로 전달돼서 재활용됩니다. 신대양제지 등 제지 업체에 재활용 과정을 문의해 봤습니다.
재활용 공정의 첫 단계는 파지를 액체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종이를 갈면서 화학 처리를 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이물질은 위에 뜨고 종이 원료는 밑에 가라앉습니다. 이물질을 걸러내긴 하지만, 100% 완벽하게 거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물질을 완벽히 걸러내지 못하면 재생 종이의 품질이 떨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비닐테이프를 가급적 제거하고 종이 박스를 버리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이물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 압축된 종이11 |
그렇다면 종이테이프는 이물질일까요? 아니면 재생 종이의 원료일까요?
류정용 강원대 제지공학전공 교수에게 종이테이프가 이물질인지, 아니면 재생 종이 원료인지 문의했습니다.
류정용 교수는 취재진에게 실험을 통해 답변을 줬습니다.
'종이테이프가 붙은 종이 상자'가 재활용 과정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취재진과 함께 직접 실험해봤는데요. 종이 상자 대신, A4용지에 종이테이프를 붙여서 '해리'라는 작업을 해봤습니다. 종이는 섬유가 얽혀 있는 구조인데, 해리는 재활용을 위해 이 결합을 푸는 과정을 말합니다. 제지 공장에서 압축된 파지를 액체로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디스인티그레이터'라고 불리는 회전 분쇄기로 종이테이프가 붙은 종이를 현탁액 상태로 만든 뒤 '소머빌 스크린'이라는 기계를 이용해 체에 거르는 작업을 합니다.
↑ '소머빌 스크린' 작업 |
그런데 끈적끈적한 점착제 성분이 체에 남아있습니다. 종이테이프의 점착제 성분입니다.
↑ 남아있는 점착제 성분 |
점착제 성분은 종이와 달리 '수용성'이 아니다 보니 종이를 녹인 액체에 섞이지 않는 겁니다. 파지를 재활용하는 과정이었다면 이 점착제 성분은 이물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점착제 성분이 들어 있는 재생 종이 원료로 종이를 만들면 재생 종이의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는 걸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류정용 강원대 교수는 "테이프가 종이와 똑같이 물에 풀리고, 종이의 원료가 될 수 있는 재질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물에 풀리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테이프나, 종이로 만들어진 테이프지만 거기에 발려진 점착제가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인 경우 종이를 만드는 공정의 생산 효율이나 최종 재생 종이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류정용 강원대 제지공학전공 교수 |
결국 종이테이프의 '종이'는 문제가 없지만 테이프의 성분이 재활용에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종이테이프 점착제가 완전한 수용성 성분이라면 떼어내지 않고 종이 상자와 함께 폐기해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사용되는 종이테이프 가운데 수용성 점착제를 사용하는 제품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앞으로 수용성 점착제를 사용하는 제품이 널리 보급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종이테이프를 떼고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종이테이프도 종이기 때문에 박스와 같이 종이로 재활용할 수 있다고 소비자들은 착각하기 쉬운데, 종이테이프에는 접착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화학 물질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재활용이 안 될 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종이테이프는 이물질로 생각해서 제거를 해서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종이테이프를 떼어내지 않고 버리더라도 재활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재활용 효율을 높이려면 종이테이프는 떼어내고 버리는 게 좋습니다. '종이테이프가 종이 상자와 함께 버리면 재활용된다'는 말은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소비자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는데요. 전문가들은 종이와 함께 버려도 되는, 즉 수용성 점착제 테이프인지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 테이프는 종이 상자와 함께 버려도 됩니다"와 같은 문구를 제품 겉면에 표기한다면 소비자들이 재활용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상품도 구매하고, 버릴 때도 참고할 수 있을 겁니다.
↑ 종이테이프가 붙어있는 종이 박스 |
홍수열 소장은 "'종이 재활용성 평가 제도'를 도입해서 재활용이 가능한 종류인지 정보를 제공해야 소비자들이 분리 배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태림 기자 / goblyn.mik@mbn.co.kr]
취재지원 : 김옥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