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난밤 '꿀잠'을 주무셨나요?
서울 영등포역 근처 재개발지역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인 '꿀잠'이 있습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집 같은 곳이었지만, 이곳이 재개발 논리 앞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탐사 M에서 전남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아파트와 빌딩 숲 사이에 난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4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이 나옵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도신로51길 7-13.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인 '꿀잠'입니다.
「지난 2017년 각계 각층 3천 여명의 성금과 100여 일에 걸친 공사 끝에 문을 연 꿀잠은 해고노동자나 지방에서 올라온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잠자리나 식사 등을 제공하는 곳으로, 매년 4천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찾습니다.」
10년째 대리운전기사를 하는 이창배 씨에게도, 부당해고로 8년째 복직 투쟁을 벌이는 차헌호 씨에게도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 인터뷰 : 이창배 / 대리운전 기사
- 「"여기는 거의 천국이죠. 따뜻한 아랫목 같은 방 같은 차갑고 비정한 투쟁판에 있다가 여기오면 위로받고 따뜻하고 휴식과 함께 새로운 힘을 얻는 공간이죠."」
▶ 인터뷰 : 차헌호 / 해고 노동자
- 「"예전엔 다른 노조사무실 바닥에서 잤는데, 10원도 내지 않고 하니까. 이 공간에서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 만나서 이야기하면 위로 되고 내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하지만, 꿀잠은 머지않아 철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 스탠딩 : 전남주 / 기자
- "이곳 신길동 190번지 일대는 서울시가 지난 2009년 주택재개발 정비계획을 결정한 장소입니다. 사업이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3월 조합이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재개발 사업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재개발이 이뤄지면, 꿀잠이 있던 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뀝니다.
▶ 인터뷰 : 김소연 /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운영위원장
- 「"아파트에 입주해서는 저희 사업을 진행할 수 없으니까요. 저희의 입장을 전했어요. 우리는 이렇게 소중하게 만들어진 공간이고 지금도 많은 노동자가 이용하고 있고 그래서 공공재다. 그래서 적어도 여기를 존치를 시켜야 한다 요청을 했고 그랬는 데 특별한 답변이 있지는 않았어요."」
「신길 제2구역 재개발 정비사업조합 측은 꿀잠이 재개발 구역 한 가운데에 있고, 다른 조합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존치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오늘도 영등포구청 앞에서는 릴레이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형성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 「"지금으로서는 면담 신청도 안 되고 있고 안 받아들여지고 있고. 저희가 재개발을 완전히 반대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의미 있는 공간을 존립할 수 있는 공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
계획 초반에는 구청이 중재에 나서 합의점을 찾는 듯 보였으나, 지금은 행정권의 한계가 있다는 답변 뿐입니다.
▶ 인터뷰(☎) : 서울 영등포구청 관계자
- 「"어떻게 보면 조합이 결성됐기 때문에 저희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현장권한 명령이 크지 않아요."」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대안도 있지만, 노동자들 피와 땀이 서린 곳인데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 인터뷰 : 이병훈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개발에 따른 개발 이익이 생긴다면 주민들이 꿀잠 같은 공간을 옮겨서 꾸밀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보는 게 어떨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꿀잠 입구에는‘여성 청소노동자’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조형물이 걸려 있습니다.
공존과 평등의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상징입니다.
하지만, 그 꿈과 희망은 부동산 급등과 재개발 광풍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MBN뉴스 전남주입니다.
영상취재 : 조영민 기자
영상편집 : 이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