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범 금융위원장(오른쪽)과 김병욱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카드수수료 개편방안 당정협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주형 기자] |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수수료를 직접 결정하는 행태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또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는 대신 이 비용을 카드 소비자에게 전가할 것으로 보인다. 가맹점 부담은 덜어주면서 소비자의 부담은 늘리는 전형적인 '밑돌 빼서 윗돌 괴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당정은 23일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연매출 3억원 이하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는 기존 0.8%에서 0.5%로 줄어든다. 연매출 3억∼5억원은 1.3%에서 1.1%로, 5억∼10억원은 1.4%에서 1.25%로 인하된다. 10억∼30억원은 1.6%에서 1.5%로 하향 조정된다.
이번 조치로 2024년까지 매년 6900억원의 카드사 수수료 수입이 줄어든다. 이날 당정협의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올해 적격비용을 산정한 결과, 2018년 이후 추가로 수수료 부담 경감이 가능한 금액이 약 6900억원으로 분석됐고, 이미 부담을 줄인 2200억원을 고려하면 수수료율 조정으로 줄일 수 있는 금액은 약 4700억원으로 나타났다"고 수수료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적격비용이란 '원가'에서 카드사의 각종 비용(자금조달 비용, 위험관리 비용, 일반관리 비용, 밴 수수료 비용, 마케팅 비용, 조정 비용 등)을 뺀 것이다. 금융당국은 12년간 적격비용을 산정하고 이를 토대로 수수료를 인하해 왔다. 2018년에는 같은 조치로 1조4000억원의 수수료를 낮춘 바 있다.
카드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정부와 여당의 행태가 시장경제 원리를 부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수천억 원의 수입이 추가로 줄어들면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종우 카드사 노조협의회 회장도 "손해를 보는 카드사가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비용 절감에 나설 텐데, 이는 결국 연회비 상승 등 소비자 혜택 감소와 카드사 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7개 카드사 노조는 지난달 총파업을 결의했는데,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응 방향을 밝힐 예정이다.
카드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혜택이 좋다고 소문난 이른바 '혜자 카드'들이 줄줄이 단종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카드 수수료율이 개편될 때마다 '단종 카드'가 급증했다. 기존 혜택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내기 힘들 때 카드사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단종이다. 실제 금융 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카드)가 올해 단종한 카드(신용·체크) 상품은 192종에 달한다.
'3년 주기'로 카드사 수수료를 손보는 것이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개정하면서 3년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의 적격비용을 산출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매번 수수료를 인하한 바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3년 단위라고 못 박은 조항은 없다. 업계는 수익은 반영하지 않는 현재의 적격비용 계산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로 수익이 줄어드니 회사들이 열심히 비용을 절감한다. 그러면 3년 뒤 정부가 비용이 이만큼 줄었으니 수수료를 더 내리라고 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고승범 위원장은 "카드 업계는 본업인 신용판매에서 수익을 얻기 힘든 어려움에 처해 있고 소비자 혜택도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면서 "소비자, 가맹점, 카드 업계 중심으로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수수료
한편 이날 결정을 두고 대선을 의식한 더불어민주당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코로나19에 따른 영업 제한 장기화로 극도로 악화된 자영업자를 달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신찬옥 기자 / 최근도 기자 / 이석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