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성공 이끈 '국가주도 성장 모델' 한계 직면
윤희숙 "법치 신뢰 회복해야"
↑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 사진 = 매일경제 |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동에 나섰습니다. 지난 8월 의원직 사퇴 이후 약 3개월 만입니다. MBN과 매일경제가 후원하고 경제사회연구원이 주최한 '2030비전세미나' 기조발제를 통해서입니다.
↑ 경제사회연구원이 주최한 '2030비전세미나'에서 기조발제를 하는 윤희숙 전 의원. / 사진 = 유튜브 경제사회TV 캡쳐 |
24일 윤 의원은 '병목과 리부팅'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과거 어쩔 수 없이 썼던 국가주도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면서 '이재명 저격수'의 면모도 드러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면서도 "이 시점에 국가주도 성장이라든가 하는 의제들이 왜 나오는가"라며 "돈을 뿌리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이어 "성과 위주의 장기적 경제전략을 쓰지 않고 단기적인 패거리 정치, 환심을 사는 정치를 하려고 해서 그렇다"며 "그렇다보니 포퓰리즘 정치를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국가주도 성장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불법적 방식으로 투쟁할 때도 있다. 범법자로 몰릴 때도 있다. 투쟁의 양식이 선을 넘을 때,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각자가 판단하는 것이다. 저는 그런 식의 삶을 응원한다. 저도 그랬기 때문이다"라는 이 후보의 발언과 관련해 법치에 대한 관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기조발제에서 윤 전 의원은 현재 대선 국면에서 제기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다음 정부가 풀어내야 할 단기적 문제와 국가 규범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발 물러서서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장 뚫어내야 할 '병목'이 무엇이고 '리부팅'을 위해 채워넣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이를 위해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공적 주체로서 정부의 역할을 논할 때 주로 거론되는 '큰정부·작은정부' 논쟁을 의미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서구 선진국의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시기에 따라 역할이 달라져 왔다는 것입니다.
시장이 발흥한 산업혁명부터 대공황까지 시기에는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는 최소국가의 시대였고, 이후 시장의 부작용이 불거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등 1970년대까지의 시기는 큰 국가의 시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는 시장 부작용을 치유하고 국민을 보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큰 국가가 작동했고, 이후 국가 부작용이 커진 198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태동해 작은국가 담론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금은 사회적 격차의 문제가 체제를 위협하는 단계로 들어섰기 때문에 사회통합 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산업혁명 이후 인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큰 국가냐, 작은 국가냐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윤 전 의원의 주장입니다. 시기에 따라 역할이 다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전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되는데, 시장경제의 파이를 증가시키는 것은 결국 개인과 기업, 민간의 창의와 자발성"이라면서 "이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의 영향력과 힘이 절제되고 제한돼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참여로 시장의 생산성·혁신성이 저해될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다만, 시장 내에서 정부의 과도한 영향력은 우려하면서도 '시장 밖'에서는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 시장에서 누락되거나 소외되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국가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시장경제 체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사회통합과 결속 유지, 분배와 사회적 투자 같은 것들입니다.
이 같은 정부의 역할을 '나라를 나라답게 하기 위한 기본 전제'로 설명하면서 '법치'와 '익명성'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익명성은 개인 정체성을 숨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 친분에 국정이 휘둘리지 않는 공과 사의 철저한 구분을 의미합니다. 친하다고 해서 특혜를 주거나 등용하지 않고 법과 계약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꿔말해 법치가 바로서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어 "산업혁명 이후 시장경제 유지를 위해서도 기본 조건"이라며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한 한계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위한 기본 잣대가 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힘이 있다고 해서 법, 혹은 계약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없고 약한 자여도 법이나 계약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바탕이 돼야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국사태를 보며 국민이 분노했는데, 단순히 정서적인 정의의 문제만이 아니라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과 기본적인 신뢰에 대한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사회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국가주도 성장 모델의 구조적 한계, 즉 병목현상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를 뛰어 넘기 위한 방안으로 ▲법치에 대한 신뢰 회복 ▲국가주도성장에서 개인의 창의혁신 ▲경쟁에서 적극적 출발선을 만들기 위한 인프라 투자 ▲경쟁에서 뒤쳐진 취약층 보호와 격차완화 ▲분열극복을 위한 포퓰리즘 경계·책임정치 실현을 꼽았습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우리나라는 1961년 1인당 GDP가 94달러로 세계 최빈국 그룹에 속해 있다가 1990년대 중동 산유국 수준의 중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이탈리아와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습니다. 윤 전 의원은 "특정한 산업지형이나 기술지형이 변화하는, 국제적인 교역질서 등이 변화하는 국면에서 잘 적응하는 주체는 자기 그룹을 뛰어넘어 앞서 나갔다"며 "우리 경제개발 60년 역사에서 '점프'가 2번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시기·국가별 1인당 GDP / 사진 = 유튜브 경제사회TV 캡쳐 |
이 같은 국가경제의 질적 향상이 아주 어렵다는 점에서 빈곤국 함정, 중진국 함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자원 빈곤국으로서 두 가지 함정을 모두 빠져나온 전 세계 거의 유일한 사례입니다.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급망 재편은 윤 전 의원이 말한 국제적인 산업·기술·교역 질서의 변화 국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대선 이후 출범할 다음 정부에는 이 같은 대변혁의 시기에 잘 적응할 책임이 부과되는 것입니다.
윤 전 의원은 "정리하자면 성공 방정식을 이야기하기 전에 국가의 역할이 뭐냐를 말할 때 국민 각자가 혁신적일 수 있도록 선택 범위를 극대화해주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 경쟁이 파괴적으로 서로를 미워하
[신동규 기자 easternk@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