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화 특성상 학생이 동의했다 보기 어려워"
"신입생 모집요강에도 채플 필수이수 내용 없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가 기독교 예배인 '채플' 수업을 졸업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대학교에 대해 학생 개인의 종교의 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도록 대체과목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국내 각급의 여러 학교가 기독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돼 이 같은 채플 수업을 개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위가 이 같은 권고를 내림으로써 수십 년 동안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온 채플 수업이 제도적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주목됩니다.
인권위는 24일 "진정인은 피진정대학교가 채플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개설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채플 수업을 강제하고 해당 수업을 이수하지 않을 시 졸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학생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인권위 진정을 접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인권위는 "특정 종교의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종파교육은 피교육자인 학생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피진정대학이 학생들의 개별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사실상 종파교육을 강요함으로써 학생의 종교의 자유, 즉 특정 종교를 믿지 않을 소극적인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인권위는 자체 조사 결과, 피진정대학이 기독정신에 입각해 설립됐지만 보건인력 등 전문직업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는 대학으로서, 모든 전공학과가 간호학과·임상병리학과·치위생학과·물리치료과 등 기독교 신앙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학과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신입생의 지원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이 같은 권고의 이유로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피진정대학교는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사립학교의 다양하고 특성 있는 설립 목적'을 추구하는 동시에 학생의 종교 선택의 자유 또한 침해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육기본법> 제25조는 '국가와 지자체는 사립학교를 지원·육성해야 하며, 사립학교의 다양하고 특성 있는 설립목적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근거로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 피진정대학은 "입학생에게 학칙 준수와 학업에 충실할 것을 약속하는 선서를 받고 있다"며 학생들이 이미 기독정신에 입각해 설립된 학교의 규정을 따르겠다고 동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채플은 포교 목적이 아니고 종교 전파에 대한 강제성을 갖고 있지도 않다"며 "대표 기도를 드리는 학생만 해도 임의로 정하는 게 아니라 신앙심을 갖고 있는 이들 중에서 자원을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인권위는 과거 대법원(2010)과 헌법재판소(2000)의 판례를 인용하며 교육과 관계된 법령이 헌법을 무시하는 무제한적인 권리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인권위는 "헌법 제31조 제4항은 대학의 자율성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됨을 명시하고 있고, 헌법 제20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두 기본권의 실체적인 조화를 꾀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신앙의 자유에는 신앙을 가질 자유와 더불어 신앙을 갖지 않을 무신앙의 자유도 포함되며, 종교적 행위의 자유에는 포교의 자유와 더불어 종교적 의식을 거행함에 있어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인 종교행사의 자유도 포함된다"며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함으로써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항이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받아들일 자유를 침해받게 될 강제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권위는 "종교교육을 할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학교가 공교육 체계에 편입된 이상, 원칙적으로 학생의 종교의 자유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고려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속에서 그런 자유는 누린다고 할 것"이라며 채플을 대신할 대체과목 신설을 촉구했습니다.
인권위는 이 같이 권고하며 채플이 피진정대학의 주장과 달리 "기독교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종파교육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피진정대학이 "비신앙 학생에게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기독교적 소양과 사회가 요구하는 지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반박했으나, 인권위는 "채플의 구성이 실제 예배와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인권위는 학생들이 입학하며 학칙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통해 채플 수업 수강에 대해서 동의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설득력이 없다고 봤습니다.
인권위는 "우리 대학구조상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그 중에서도 30% 이상이 종립대학이라는 현실과 학생들의 대학선택
그러면서 인권위는 "신입생 모집요강에도 채플을 이수하지 않을 시 졸업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 백길종 기자 / 100road@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