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죽음의 안개가 이 나라의 산과 들을 덮게 되었는가
...
뿌옇게 지구를 감고 있는
연기와 먼지는 드디어
온통 이 세상을 겨울도 봄도 여름도 없는
삶도 죽음도 아닌 세상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
-신경림,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1998년 신경림 시인이 발표한 시의 일부입니다. 국내에서 미세먼지가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도 딱 이맘때였는데요. 급속도로 진행되던 경제 발전이 정점에 달했던 1990년대 중반, 사람들의 눈에 드디어 누런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 정부는 미세먼지를 대기오염 관리대상으로 지정했고, 1995년부터는 미세먼지(pm10) 측정을 시작했습니다. 측정 첫해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서울의 연평균 미세먼지 수치는 78㎍/㎥였는데요. 현재 세계보건기구 WHO가 정해놓고 있는 기준(연평균 20μg/m³)의 4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경제성장 지표 하나만을 바라봤던 대한민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매연을 내뿜던 공장에 대한 규제가 실시됐고, 자동차 홀짝제가 처음으로 도입되는 등 체계적인 대기환경 정책이 등장했죠.
그리고 이런 정책들은 분명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2002년부터는 극적인 감소가 이뤄졌는데요. 서울의 경우 2002년 76㎍/㎥에서 2012년 41㎍/㎥까지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미세먼지 수치는 박스권(?)에 갇히게 됩니다. 먼저, 2010년~2020년 전국 미세먼지 수치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보시죠.
빨간색 점선이 전체 추세선인데요. 2012년까지 잘 내려오던 그래프가 미약하게나마 다시 우상향하기 시작합니다. 2016년부터는 다시 떨어지긴 하지만 이전처럼 시원한 하락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죠.
↑ 중국 내 석탄화력발전소 분포(출처: 그린피스) |
많은 이들이 중국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중국 대륙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을 크게 받죠. 2000년대 이후 중국이 세계 최대의 공업 국가로 성장하면서, 우후죽순 생긴 (특히 황해안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공장과 석탄화력발전소가 내뿜는 오염물질이 그대로 한반도로 유입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내 미세먼지의 59%가 중국에서 온다는 국내 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2019년~2020년 사이의 추세선이 갑자기 낮아진 원인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 내 공장들이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란 시각이 우세합니다.
국내 주요 도시 지역 73곳의 미세먼지-질병 밀접성 분석
봄, 겨울만 되면 우리를 찾아오는 불청객 미세먼지, MBN데이터취재팀은 각종 데이터를 통해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현황은 어떠했는지, 미세먼지가 우리 국민 건강에 끼친 영향은 어떠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분석 대상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최대한 통일시키려고 노력했는데요. 서울과 6개 광역시(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 총 7개 도시의 기초자치단체 73곳을 대상으로 분석했습니다.(인천 옹진군은 데이터 부재로 제외) 지역별로 ▲미세먼지 위험도 ▲(미세먼지로 인한) 질병 위험도 ▲미세먼지와 질병 간의 상관관계(밀접성)를 입체적으로 뜯어보고 이를 연속 보도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본격적인 미세먼지-질병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프롤로그(?) 격으로 각 지역의 미세먼지 위험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지역별 미세먼지 수치와 미세먼지 증감률을 함께 고려해 지역별 종합 위험도 순위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10년 동안 단 한 곳도 WHO 기준 충족 못해
세계보건기구 WHO가 정한 연평균 미세먼지 수치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20μg/m³입니다. 이 수치를 가슴에 굳게 새기고... 우리나라 도시 지역들은 지난 10년 동안 이 수치를 몇 번이나 지켰을까요?
0번입니다. (응?) 네 0번 맞습니다. 그러니까 연평균 20μg/m³이란 기준을 지난 10년 동안 단 1년이라도 지켜본 곳이 73곳 중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겁니다. 전체 평균을 내보면 더 잘 보입니다.
↑ 전국 주요 도시 지역 미세먼지 수치(2011~2020년 종합) |
지난 10년 동안 월별 미세먼지 평균이 가장 높았던 곳은 부산 사하구로 55.1μg/m³를 기록했는데요. 그 뒤를 서부산 지역들 잇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평균 미세먼지 수치가 가장 낮은 지역도 부산이었는데요. 바로 부산 해운대구였습니다. 아마 서부산 지역에 각종 공단이 몰려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어쨌든 미세먼지 수치가 가장 낮았다는 해운대구 역시 10년 평균 37.1μg/m³ 기록했습니다. WHO 기준의 2배에 가까운 기록이죠. 연 단위는 차치하고 월 단위로 살펴봐도 73곳 중 37곳이 10년 동안 단 한 달도 평균 20μg/m³ 이하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봄, 겨울 수치만 떼어내서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10년치를 평균했을 때, 연평균 기준인 20μg/m³은커녕, 일평균 기준인 50μg/m³도 지키지 못하고 초과한 곳이 전체의 70%(52곳)이었습니다.
부산 사상구의 경우 전체 조사 기간(봄+겨울 53개월) 중 81%(43개월)가 50μg/m³을 초과했고, 역시 부산 사하구(79%), 서울 서초구(70%), 대전 대덕구(70%), 서울 영등포구(68%)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미세먼지, 대부분 지역에서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미세먼지 증감추이는 어땠을까요? 미세먼지 수치를 계절별로 묶은 뒤, 봄과 겨울 데이터만 추출해 이를 전년도 계절 대비 증감률로 변환했고 이를 다시 지역별로 기하평균했는데요.
다행히 대부분의 지역에서 증가 속도가 1이하였습니다. 대체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거죠. 그러나 대부분 0.95 안팎에 몰려있어서 미세한 감소에 그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대전 동구 등 6개 지역은 이 속도가 1이 넘었습니다. 10년 간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는 거죠. 앞서 말씀드렸던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공장 중단’ 착시효과를 배제하기 위해 2019년 겨울과 2020년 봄의 수치를 제외하면, 증가 속도가 1 이상인 곳은 총 13곳으로 늘어납니다.
미세먼지 위험도 1위 지역은 '대전 동구'
그렇다면 절대적인 미세먼지 수치와 미세먼지 증감율 모두를 고려했을 때, 전국 도시 지역 중 가장 미세먼지 위험성이 높은 곳은 어디였을까요?
취재팀은 1)봄,겨울 중 미세먼지 평균 수치가 WHO 일평균 기준 (50μg/m³)을 초과한 달의 지역별 비율(미세먼지 기준 초과율)과 2)전년도 대비 계절별 미세먼지 증가율 수치 기하평균값(미세먼지 증가 속도)를 정규분포로 표준화(t점수)하고 이를 합산해 73곳 지역의 ‘미세먼지 위험도’를 구했는데요.
미세먼지 위험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대전 동구였습니다. ‘미세먼지 기준 초과율’은 전체 33위로 중간 정도에 위치했지만, ‘미세먼지 증가 속도’가 독보적인 1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위는 대전 대덕구였습니다. ‘미세먼지 기준 초과율’ 전체 4위, ‘미세먼지 증감 속도’ 18위 등 고른(?) 점수를 받았네요. 그 뒤를 인천 동구, 서울 양천구, 서울 강서구 등이 이었습니다. 가장 위험도가 덜한 곳은 초과율 67위, 증가 속도 72위를 기록한 부산 동구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미세먼지가 도시 시민들의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오늘 저녁 MBN 종합뉴스와 내일 오전 온라인으로 예정된 <도시와 미세먼지>에서는 각 지역의 미세먼지 수치와 호흡기·혈관 질환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또, KDX한국데이터거래소를 통해 자세한 취재 데이터를 독자 여러분께 공개하고 있습니다.
[민경영 MBN 데이터 전문기자 / busines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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