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정오 경 고 백기완 선생의 운구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앞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윤식 기자] |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의 발인을 시작으로 대학로에서의 노제, 시청으로 이어진 운구 행렬과 서울광장에서의 영결식을 진행했다.
이날 오전 8시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유족과 추모객들이 참여한 가운데 발인이 이뤄졌다. 오전 9시께부터는 고인이 살아 생전 노동·통일·민중운동을 한 거점이 된 통일문제연구소가 있는 대학로 소나무길 일대에서 노제가 이뤄졌다. 노제에는 민주노총과 산하 단체를 비롯해 4·16세월호참사유가족협의회, 전국철거민연합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일반 시민 등 수백명이 참여했다.
↑ 19일 오전 고 백기완 선생의 운구 행렬 선두의 풍물패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을 지나고 있다. [이윤식 기자] |
노제를 마친 9시50분께 운구는 대학로를 떠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위패와 영정사진을 앞세운 운구 행렬 뒤로는 고인의 모습을 본딴 거대한 한지 인형, 꽃상여, 수십 명의 풍물패가 이어졌다. 고인의 모습을 본딴 상(像) 앞에는 '노나메기 차별없는 세상! 해고없는 세상! 김진숙 복직!' '제대로 만들어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등 구호가 적힌 인형이 서 있었다. 운구 행렬에는 노동·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300m가량 이어졌다. 행렬은 1시간 30여분에 걸쳐 종로5가역, 종묘 앞, 종각역, 광화문역 앞을 지나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영결식은 서울광장에서 오전 11시 30분께부터 진행됐다. 운구행렬에 영결식장에 미리 모인 인파가 합쳐져 추모객은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은 4·16세월호유가족협의회 등 유가족들이 맡았다. 세월호 유가족 측은 합창에 앞서 "백기완 선생님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며 "두 눈 감으실 때까지 놓지 않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다시 촛불을 든다"고 말했다. 추모식에는 이재명 경기지사,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진보 정치인들도 직접 참석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고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는 운구 행렬이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윤식 기자] |
신철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도 "선생님은 민중, 특히 투쟁하는 민중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분"이라고 회고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가사처럼 남은 우리들이 선생님이 앞서 가신 길을 잘 따르겠다고 다짐한다"고 썼다.
↑ 9일 정오 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백기완 선생 영결식장에서 시민들이 운구를 맞이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윤식 기자] |
1979년 '명동 YWCA위장결혼사건'으로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으로 정신을 잃고 깨어나 쓴 시가 '묏비나리'다. 묏비나리는 '우리 강산을 위한 기원'이란 뜻이다. 이 시에 쓰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등이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태가 됐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 그는 민중 후보로 출마했지만 김대중·김영삼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선거 이틀 전 사퇴했다.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지만 1% 득표율에 그쳤다. 이후 정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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