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알링턴) 김재호 특파원
3월의 클리어워터 비치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주말을 맞아 많은 인파가 해변을 찾았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선수가 나오며 시즌이 중단되고,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주요 프로스포츠들이 일제히 시즌 연기를 선언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 이름도 낯선 바이러스는 미국에서 남의 나라 일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한테는 이상한 말 안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한 피자가게에서 이탈리아계로 추정되는 가게 주인이 던진 말 한마디에 그나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메이저리그는 2020년 사상 초유의 무관중 60경기 시즌으로 진행됐다. 사진=ⓒAFPBBNews = News1 |
그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국은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이 됐다. 환자들로 가득한 병원이, 영안실이 부족해 냉동차에 쌓이는 시체더미가, 낯선 섬에 줄줄히 묻히는 관들이 TV에 나왔다. '더운 여름이 오면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지만, 거짓말이었다. 주지사가 '2주뒤 우리가 뉴욕처럼 될거라고 했던 사람들은 어디갔는가'라며 큰소리쳤던 플로리다주는 여름들어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각 스포츠들은 재개 준비에 들어갔다. 코로나19는 오히려 더 퍼졌지만, 단 하나 차이, 이전보다 나아진 검사 능력 덕분이었다. 초반에는 제대로된 검사조차 어려웠다.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은 그만큼 허술했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 그리고 돈이었다. 메이저리그 노사는 시즌 규모와 연봉 삭감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며 그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2020시즌은 바이러스가 아닌 돈 때문에 무산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재난은 약자들을 먼저 덮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노사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이, 시즌을 치르지 못한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구단들이 매주 지급하는 생계비에 의지해야했고 방출된 선수들은 이마저도 얻지 못했다. 구단마다 해고되는 직원들이 속출했다.
우여곡절끝에 메이저리그 개막이 확정됐다. 무관중 60경기라는 초유의 형태였다. 관중들이 가득했던 경기장에는 가짜 관중들의 함성만이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처럼 홈구장을 찾지 못하는 팀도 나왔다. 이전에 보지 못한 형태의 낯선 시즌에 많은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했고, 투수들이 짧은 준비기간, 자체 경기로 대체된 시범경기 일정에 적응하지 못하며 부상자가 속출했다.
프로스포츠의 재개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것'이라던 장밋빛 기대는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현실만 다시 확인시켜줬다. 마이애미 말린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팀내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오랜 시간을 쉬어야했다. 이후에도 크고작은 확진 사례들이 보고됐다. 마지막 경기였던 월드시리즈 6차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 스포츠의 재개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안겨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집단 감염이 벌어진 것에서 볼 수 있듯, 현실만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AFPBBNews = News1 |
절망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구단내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를 비롯해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경기가 열리지 못하면서 수입이 끊긴 구장 일용직 직원들을 돕는 손길도 있었다.
조지 플로이드를 비롯한 몇 건의 흑인 피격사건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스포츠계를 뒤흔들었다. 선수들은 경기를 거부하고, 국가 연주 시간에 무릎을 꿇으며 인종차별에 항의했다.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목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토론토 내야수 캐반 비지오는 팀 동료인 흑인 외야수 앤소이 알포드가 국가 저항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을 보고 먼저 다가가 '내가 함께하면 좀 더 편해질 거 같냐?'고 물으며 같이 무릎을 꿇었다.
벡신이 나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가 마스크를 쓰는 것이다. 답답하고 숨차고 안경에 계속해서 김이 서려도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난은 우리에게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추신수는 지난 7월 "지금 이 시간은 모든 이들을 배려하기에 아주 좋은 시기라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2021년으로 넘어가는 지금, 새로운 해를 더 나은 시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이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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