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봉구 창동역 근처 아파트(전용 84㎡)에 살고 있는 A씨는 집주인의 요구에 밤잠을 설친다. 내년 초 전세 만기가 다가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자 집주인이 갑자기 전액 월세 전환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5억원의 전세를 5억2500만원만 올리돼 이를 전부 월세로 전환하고 매달 109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A씨는 "법적으로야 월세 전환을 거부하고, 보증금을 2500만원만 올려주면 되지만 집주인으로 부터 시달리니 너무 힘들다"며 "전부 전환하기는 힘들고 보증금을 3억2500만원으로 하돼 월세는 41만원으로 하는 방향으로 협의중이다"고 말했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변호사는 "월세 전환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가 합의해야 하기 때문에 세입자가 버틴다면 전세로 계속 살 수 있다"며 "다만 월세를 원치 않더라도 집주인이 세입자를 압박할 카드가 다양하거나, 직계존비속 실거주를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많아 현실적으로는 세입자가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전월세 전환에 유의미한 변화는 없다'는 정부의 설명이 무색하게 월세 급등의 신호가 민간 통계에 포착됐다.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 상승률이 개정된 임대차법 시행 이후 연달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30일 KB국민은행의 월간주택동향에 따르면 11월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02.7포인트로 전달 101.6포인트에 비해 1.1포인트 상승했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래 매달 0.1포인트 씩만 움직이던 이 지수의 변동폭이 10배 이상 커진 것이다. 그간 크게 변동이 없던 이 지수가 역대급' 기록을 쓴 건 임대차법 시행(7월 31일)직후다. 8월 100.4였던 이 지수는 9월 101.2로 치솟더니 11월 102.7을 찍었다. 임대차법 이후로만 따지면 평소 변동폭인 0.1포인트보다 20배 이상 치솟았다.
원인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인한 전세물량 감소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매물이 급감해 특히 아파트를 중심으로 임대인 우위의 시장이 돼버렸다"며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전세금을 올리는 것보다는 상승분 월세로 전환할 유인이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종합부동산세 등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저금리 등의 이유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유인이 원래부터 컸는데 임대차법 이후로 이를 실행하기 가장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임대차법 이후 월세나 반전세가 급증하면서 본격적인 '월세 시장'이 형성될 조짐도 보인다. 익명의 전문가는 "한국에선 원래 독립적인 월세 시장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다"며 "독립적인 시장으로 기능하려면 자체 가격 설정 기능이 있어야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전세값이 먼저 정해지면 그 중 얼마를 월세로 돌릴지 하는 식이었다. 지금처럼 월세가 크게 늘어난다면 매매시장과 월세시장으로 이원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월세난을 초래한 전세 매물 감소는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0일까지 확정일자가 신고된 11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4243건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처음 발표된 2011년 1월 이후 전세 거래량이 5000건을 밑돈 것은 처음이다.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거나 재건축 아파트 실거주 의무 등으로 11월 서울 전세거래가 지난해 3분의 1 수준 급감한 것이다.
특히 거래량은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국회 문턱을 넘은 지난 7월 1만3306건 이후 매달 줄었다. 8월 1만56건, 9월 7567건, 10월 7248건이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도 거래량은 한참 줄었다. 2019년 11월 서울시 전세 거래량은 1만1962건으로 지금의 3배 수준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평균 거래량도 1만건을 웃돈다.
전세·월세난이 심화하면서 빌라로 밀려나는 현상도 관찰된다. 송파구 잠실동 A 공인 대표는 "아파트 매맷값이랑 전셋값이 억단위로 오르면서 예산이 빠듯한 신혼부부들은 역세권 신축 빌라로도 눈을 돌리는 것 같다. 관련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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