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국회 교통위원회에 출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정회 시간에 윤성원 1차관(왼쪽)과 손명수 2차관 사이에서 통화하고 있다. 김 장관은 앞서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거안정 지원 방안을 브리핑하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면서도 임대차법을 바꾸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김호영 기자] |
그는 19일 전세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월, 임차인의 거주권을 2년에서 4년으로 보장하는 임대차 3법이 31년 만에 개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법 시행 전에 57.2%였던 전월세 계약 갱신율은 10월에는 66.2%까지 높아졌습니다. 10명 중 7명은 전셋값 급증에 대한 걱정 없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진실일까. 물론 숫자 자체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서 나오는 결론, 즉 '10명 중 7명은 전셋값 급증에 대한 걱정 없이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됐다'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세입자가 계약 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살던 집에 2년 더 거주할 수는 있겠으나, 그 2년 뒤에는 미친 전셋값을 만나야 한다. 전세난의 고통이 2년 미뤄졌을 뿐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장관은 어떻게 '전셋값 급증에 대한 걱정 없이'라는 말을 당당하게 국민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그 심정 이해는 간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전셋값 폭등과 전세난에는 임대차법 개정이 한몫했다. 임대차법 개정으로 세입자들은 기존 집에서 2년 더 살 수 있게 됐다. 전셋값도 5% 이내에서 올려주면 된다. 당연히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기존 집에서 더 사는 걸 선택했다. 그 결과로 시장에 전세 공급은 줄어들었다. 서울과 인근의 전세 수요가 높은 지역에서는 전셋값이 급등했다. 새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은 몇억 원씩을 더 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기존 세입자 역시 2년 뒤면 그 고통을 만나게 될 거라는 건 모두가 아는 진실이다.
이 같은 고통을 안겨준 임대차법 개정을 밀어붙인 당사자들이 바로 정부·여당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그중 핵심이다. 그가 주무부처 장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서는 임대차법 개정이 국민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를 인정하면 국민의 고통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음으로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다. 당장 장관 자리를 내놓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피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임대차법 개정이 국민에게 큰 혜택을 주었다고, 그로 인한 손실은 주거안정 혜택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 믿음이야말로 '진실'이라고 자신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권의 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임대차법 개정으로 국민이 전셋값 급증에 대한 걱정 없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됐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김현미 장관은 19일에 이런 말도 했다. "임대차 3법은 집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이룬, 소중한 성과입니다." 임대차법 개정은 정부 여당이 단독으로 실행에 옮긴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거쳐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라는 말 역시 가짜다. 그 법은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속전속결로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의 축조심의조차 거치지 않았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비판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이렇게 우리나라 1000만 인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법을 만들 때는 최소한 최대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상임위원회의 축조심의 과정이 있는 겁니다. 이 축조심의 과정이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점검했을까요? (중략) 도대체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이런 것을 점검하지 않고 이거를 법으로 달랑 만듭니까? 이 법을 만드신 분들, 그리고 민주당, 이 축조심의 없이 프로세스를 가져간 민주당은 오래도록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윤 의원의 말 그대로다. 임대차법 개정은 '사회적 합의'라고 할 만한 숙의와 협의 절차를 거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장관은 '사회적 합의'라는 말을 꺼낸 것일까.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래야 임대차법 개정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준 책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기억을 만들고 사실을 해석한다. 장관 역시 사람이다. 만약 정부 여당 단독으로 법을 개정한 것이라고 하면, 그 책임 역시 온전히 정부 여당의 몫이 된다. 국토부 장관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로 법을 개정한 거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 전체의 책임이 된다. 야당도 국민도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다. 당연히 야당과 국민도 책임을 나눠지게 된다
가짜 진실을 만들면 장관과 여당, 정부 당국자들이 마음에 평온을 얻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스스로 옳다는 쾌감과 자신감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평온과 쾌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민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불편한 진실을 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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