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단계에서 연쇄살인사건을 자백한 당사자인 이춘재(56)가 1980년대 화성과 청주지역에서 벌어진 14건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내가 진범"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2일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춘재는 '진범 논란'을 빚고 있는 이 사건을 비롯해 관련 사건 일체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공개 법정에서 재확인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9월 이번 논란의 결정적 증거인 현장 체모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DNA가 손상돼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오자, 이춘재를 직접 법정에 부르기로 결정했다.
지난 1986년 첫 번째 살인사건을 저지른지 34년 만에 이춘재의 입으로 직접 그의 범행과 관련 진술을 털어놓는 자리인 만큼 이춘재가 법정으로 들어서자 모든 시선은 그에게로 쏠렸다.
이춘재는 재판 시작과 함께 곧장 바로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얗게 센 짧은 머리에 청록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쓰고 법정에 들어온 이춘재의 얼굴 곳곳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증인석에 선 이춘재는 오른손을 들고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다소 차분한 어조로 증인선서를 한 뒤 자리에 앉아 변호인 측 주 신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이날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이춘재는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가 시작된 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재수사 과정에서 아들과 어머니 등 가족이 생각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것이 다 스치듯이 지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교도소로 찾아와 DNA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추궁하자 198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저지른 14건의 살인 범행에 대해 모두 털어놨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건을 자백한 이후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부는 이춘재가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며 촬영을 불허해 언론의 사진·영상 촬영은 이뤄지지 못했다.
다만 이춘재의 증언에 국민의 관심이 높은 점을 고려해 88석 규모(사회적 거리두기로 44석 운용)의 본 법정 뿐만 아니라 별도의 중계법정 1곳을 마련해 최대한 많은 방청객이 재판을 방청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이춘재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증인석 우측의 피고인석에 앉은 재심 청구인 윤성여(53)씨는 아무말 없이 이춘재를 바라봤다.
증인신문은 변호인과 검찰 양측이 각 2시간씩 진행할 예정이다. 중간에 휴정시간을 더하면 이날 재판은 오후 6시께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씨는 감형돼 2009년 출소했고, 이춘재의 자백 뒤 지난해 11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모두 이춘재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일반에 공개된 것은 그가 자백한 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 1986년 9월로부터 34
이춘재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전종헌 기자 cap@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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