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등에 관한 역사 왜곡을 사실상 주도하는 단체에 60억 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오늘(23일) 파악됐습니다.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우익 사관을 확산하도록 자금을 공급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일본 정부가 공개하는 경쟁입찰 계약정보를 연합뉴스가 오늘(23일) 분석해보니 군함도 등 세계유산 안내 시설인 산업유산정보센터(이하 센터)를 운영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는 2016∼2019년 4년 동안 약 5억561만엔(약 57억 원)어치의 물품·역무 등 제공 계약을 일본 정부와 체결했습니다.
국민회의는 '현역 산업시설을 포함한 산업 유산의 계승'을 표방하며 2013년 9월 10일 설립돼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측면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징용을 둘러싼 한일 역사 갈등이 격화하자 우익 사관을 옹호하며 관변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일본 정부 자료를 보면 국민회의는 2017년 1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산업노동에 관한 조사' 사업을 8천964만엔에 계약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동일한 이름의 사업을 1억4천580만엔에 따냈습니다.
2018년 9월에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유산 인터프리테이션(해석) 갱신에 관한 조사 연구'를 1억2천508만엔에, 작년 10월에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각 사이트의 역사 전체에서의 인터프리테이션에 관한 조사연구'를 1억3천299만엔에 일본 정부와 각각 계약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운영 개시를 위한 조사연구' 사업을 1천210만엔에 수주했습니다.
국민회의는 일반경쟁(종합평가)을 거쳐 일본 정부와 일련의 사업을 계약했습니다.
이 단체의 계약 금액은 앞서 다른 기관이 세계유산 관련 업무를 수행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점이 눈에 띕니다.
국민회의가 세계유산 관련 업무를 계약하기 전에는 미쓰비시소켄(三菱總硏)이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업무를 맡았습니다.
자료가 공개된 2014∼2015년 2년간을 보면 미쓰비시소켄은 일본 정부와 관련 조사 연구를 6천844만엔에 계약했습니다.
이 기간 미쓰비시소켄의 계약 금액을 연평균으로 따지면 3천422만엔으로 국민회의 연평균 계약금액 1억2천640만엔의 27% 수준입니다.
이 단체가 어떤 점을 앞세워 계약을 따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일제 강점기 징용과 관련된 역사 왜곡에 사실상 앞장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회의는 군함도 주민의 발언 영상을 활용해 징용 조선인에 대한 인권 침해 등이 없었다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등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록 당시 했던 '강제 노역을 사실을 알린다'는 약속에 역행하는 활동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문을 연 센터는 징용 피해자들의 고통 섞인 증언을 부정하는 콘텐츠를 전시해 한국 정부가 도미타 고지(冨田浩司)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고바야시 히사토모(林久公) 강제동원 진상규명네트워크 사무국 차장은 일본 정부가 국민회의에 사업을 대거 맡긴 것이 역사 왜곡 활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나라의 돈을 써서 아베 총리의 개인적인 역사관을 선전하고 있으며 선전의 도구로 국민회의가 활용되고 있다"며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역사 왜곡 선전센터가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센터가 일본 정부 사업을 대거 수주한 것은 국민회의 전무이사인 가토 고코(加藤康子)의 인맥 등과 관련이 있을
가토 고코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에서 농림수산상 등을 지낸 가토 무쓰키(加藤六月·1926∼2006)의 딸이며, 아베 총리 측근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의 처형입니다.
가토 고코는 군함도 등이 세계 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을 지원했고 2015년 7월∼2019년 7월 내각관방참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