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18일 밤 김대중 당시 대통령 3남 홍걸씨가 업자 최규선으로부터 30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알선수재)로 구속됐다. 서울구치소로 호송되기 전 검찰청 1층 포토라인에 선 김씨는 거의 알아먹기 어려울만큼 작은 목소리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는 한국 나이로 이미 마흔이었는데 내 눈에는 겁에 질린 중학생처럼 보였다.
최규선 게이트 기초취재를 하면서 김씨의 행적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늦둥이 아들의 전형에 해당하는 캐릭터로 나이와 무관하게 인격적·심리적으로는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최규선은 김씨의 미성숙 혹은 순수에서 허점을 봤을 것이다. 그런 그가 후일 일국의 국회의원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법원은 그의 알선수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김씨가 현 정부에서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 의장을 거쳐 여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것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희호 공덕이라 생각한다. 그외에 무슨 자격이 있는가. 그가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할때 당시 문재인 당 대표는 환영사에서 "김 교수님의 입당은 단순한 인재영입이나 우리당의 확장 차원이 아니다. 우리 당의 정통성과 정신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계기이다"고 했다. 김씨를 통해 아버지 김대중의 상징성을 영입했다는 의미다. 아버지가 죽어서도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DJ라는 이유로 그 아들은 뇌물 전과에 아랑곳없이 국회의원이 된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이 정부 철학을 생각하게 했지만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 그런 것은 아니므로.
21대 국회 임기가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 당선자 신분인 김홍걸의 과거를 들춰보는 것은 그가 백선엽 장군을 상대로 한 '친일파' 발언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친일파 군인들의 죄상은 일제강점기에 끝난 것이 아니고 한국전쟁 중 양민학살이나 군사독재에 협력한 것도 있기 때문에 전쟁 때 세운 전공(戰功)만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또 "일본에서 발행된 백선엽씨의 책을 보면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만주군 간도특설대 시절 본인의 친일행적을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고도 했다.
인터넷 지식사이트에서 백 장군 이름으로 검색되는 논란을 그대로 긁어다 쓴 수준이다. 김씨가 백 장군의 과거 행적을 평가할 전문성을 가졌다고 볼 이유가 없으므로 그 주장의 당부를 놓고 왈가왈부할 가치도 없다. 다만 '지나치게 용감하다'는 느낌은 있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김 당선자는 본인의 2002년 알선수재 혐의 처벌 전력을 걸어 국회의원 당선을 비롯한 이후 인생을 부정하는 여론이 있다면 그에 대해 뭐라 대꾸할 것인가.
백 장군은 1920년생으로 광복 당시 20대 중반이었다. 식민지에 태어난 청년이 일본군이 되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그는 독립군과 직접 싸운 적이 없고 동포를 죽인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당시 백장군이 배속된 부대의 작전 범위로 보아 이는 사실에 부합한다고 연구자들은 쓰고 있다. 김 당선자는 백 장군이 스물다섯이 되기 이전의 합법적 활동, 그리고 본인 인생을 돌아보며 쓴 회고적 성찰을 빌미삼아 '친일파'로 공격한다. 이 공격이 타당하다면 나이 마흔살에 뇌물로 처벌받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는 어떤 공격이 주어져야 비례가 맞을까. 백장군은 6·25 때 이 나라를 구했는데 김 당선자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나. 김대중의 아들이라는 것 빼고 말이다.
이 나라에서 거칠게 친일을 들먹이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중 하나는 자기 성찰과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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