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오른쪽)가 양돈 마이스터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정혁훈 기자] |
마이스터는 우리나라 5000여 양돈농가들 중에서도 단 13명밖에 안될 정도로 희소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양돈 마이스터가 되려면 영농경력 15년 이상을 갖춘 사람들 가운데 필기시험은 물론 역량평가와 현장심사 등을 거쳐 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이스터가 됐다는 것은 양돈에 관한한 기술교육과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과 공동으로 개설한 양돈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한 마이스터들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정혁훈 기자] |
국가대표급에 해당하는 양돈 마이스터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모여든 것은 양돈 기술 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유럽 최고 수준과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양돈기술을 평가하는 대표적 잣대인 PSY(어미돼지 한 마리가 1년에 낳는 새끼돼지 마리수)가 한국은 평균 20마리가 채 안되는 반면 네덜란드는 30마리에 달한다. 이 숫자를 유럽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양돈농가들의 평생 꿈이다.
그런데, 국내 양돈업의 혁신을 위해 모인 자리에 뜻밖에도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타났다. 김 전 부총리는 이들에게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1시간 동안 강연했다. 김 전 부총리는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형편이 어려워져 홀어머니와 함께 서울 청계천변 판잣집과 경기도 광주 천막집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던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전직 고위 관료가 개인사를 진솔하게 고백하기 시작하자 나른한 오후 시간이었음에도 마이스터들은 강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 전 부총리가 말하는 '반란'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뒤집는 것 즉 혁신이었고, '유쾌하다'는 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혁신하는 것이 김 전 부총리가 말하는 유쾌한 반란이었던 셈이다.
↑ 양돈마이스터를 포함한 `와게닝겐 마스터 클래스` 관계자들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아래 왼쪽에서 네번째)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 첫째가 민승규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다섯째는 김태환 농협 축산경제 대표, 여섯째는 김창길 전 농촌경제연구원장. [정혁훈 기자] |
김 전 부총리는 이 정부 정책기조로 자리잡은 혁신성장의 설계자답게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혁신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16세기 당시 군사력이 초라했던 영국 해군이 무적함대를 기반으로 유럽 패권을 쥐고 있던 스페인 해군을 칼레해전에서 무찌른 핵심 동력이 함포의 혁신이라고 해석했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청동대포에 비해 제작비용을 4분의 1로 낮춘 주철대포를 개발해 대규모로 실전 배치한 것이 스페인 무적함대 몰락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다산 정약용 선생이 경세유표에서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곳이 없다.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불과 70년뒤 조선이 멸망하고 말았다는 역사도 소개했다. 조선은 두 가지에 눈을 감은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는데, 그 하나가 선진눈물이고 다른 하나가 국제정세였다는 것이다. 양돈 마이스터들이 지금 네덜란드의 축산기술을 외면한다면 그게 바로 선진문물이자 국제정세에 눈을 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었다.
양돈업을 잘 모르는 김 전 부총리의 강연이었지만 이날 참석한 양돈 마이스터들은 강연이 끝난 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경남 진주에서 온 정해봉 마이스터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의 필요성을 새삼 깨달았다"며 "한국 축산업이 그동안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정보 공유에 대한 폐쇄적인 문화 때문"이라며 네덜란드 축산기술 전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충남 공주에서 온 송일환 마이스터 역시 "전 부총리까지 나서서 혁신을 독려해주니 부담감이 크지만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고 말했다.
양돈 마이스터들은 이날 강연 후 김 전 부총리에게 고문을 맡아달라고 즉석에서 요청했
[대전 =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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