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투명성 논란에 휩싸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는 오늘(11일) "지난 30년간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일구고 쌓아온 세계사적 인권운동을 훼손할 수 있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정의연은 이날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피해자 92살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으로 촉발된 이후 언론 보도로 눈덩이처럼 커진 기부금 집행 투명성 논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정의연 관계자들은 기자회견 도중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보이는가 하면 일부 기자와는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의연을 이끌다가 최근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과 관련한 각종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에도 정의연의 기부금 사용 등과 관련한 일부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앞으로 추가 검증이 필요해 보입니다.
◇ 정의연 실행이사 출신 자녀가 '김복동 장학금' 받아
정의연은 이 단체 이사의 자녀가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조의금 등으로 조성된 장학금을 받았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의연 관계자는 "김복동 할머니가 평소 쌍용차 해고 노동자나 재일조선 학생들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과 연대했다"며 "할머니가 '공부하고 싶었지만 못했다'는 말씀도 하셔서 장례에 사용하고 남은 기금을 11개 시민사회여성단체에 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김복동 장학금'은 당초 10명의 학생에게 주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학생이 신청해 25명에게 200만원씩 총 5천만원을 지급하게 됐다고 합니다.
정의연은 25명 가운데 1명은 '정의연 이사'가 아니라 '정의연 실행이사를 하다가 그만둔 분'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정대협(정의연 전신) 활동만 한 게 아니다"며 "여성운동에 굉장히 오랜 기간 헌신한 활동가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게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장학금 수혜자 일부가 정의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 단체 활동에 반대하는 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어 보입니다.
◇ "윤미향, 최저임금 조금 넘는 수준 급여"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이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의 딸이 학비가 비싼 미국 대학에서 유학 중인 점까지 내세워 그가 정의연 기부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냅니다.
정의연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윤 당선인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정의연 관계자들은 윤 당선인의 이사장 시절 급여 등과 관련한 질문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 관계자는 "초기에는 교통비를 지급하다가 나중에는 '활동비'라고 부르는 급여가 나갔다"며 "밤낮없이 국내외로 뛰어 (고생을) 돈으로 따질 수 없는데도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윤 전 이사장은 굉장히 적은 인건비를 받으면서 30년간 활동했다"며 "주말을 포함해 전국을 다니며 한 수많은 강연에서 받은 금액 전액을 정의연에 기부한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의연이 윤 당선인의 남편이 운영하는 인터넷 언론사에 돈을 주고 광고를 실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홍보비를) 지출한 바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윤 당선인의 딸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피아노 관련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윤 당선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장학금을 주는 대학을 찾아서 갔다"고 밝혔지만, 유학비 출처와 관련한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윤미향, 2015년 한일 합의 내용 언제 알았나
윤 당선인은 2015년 12월 28일 발표된 한일 양국 간 위안부 관련 합의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외교부로부터 관련 내용을 미리 듣고도 마치 몰랐던 것처럼 행세하며 정부에 날선 비판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의연 관계자는 "외교부가 정대협이나 '나눔의 집'(위안부 할머니 후원 시설)에 정례적으로 와서 인사를 했지만, 구체적으로 (일본과) 고위급 협의에서 어떤 게 있는지 말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가 한일 합의에 따라 위로금 명목으로 10억엔(약 110억원)을 출연할 것이라는 점을 정의연이 알게 된 시점에 대해서는 "발표 전부터 기사에 나왔다"며 "따로 인지하지 못했다. 언론 보도를 본 것이 전부"라고 밝혔습니다.
정의연 측은 "12월 24일 일본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나와 외교부에 확인을 요청했더니 당시 동북아국장이 '언론 보도가 잘못된 것이다. 정부를 믿으라'고 회신한 것으로 안다"며 "12월 28일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정보는 일본 언론에 나온 정도였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윤 당선인이 한일 합의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정치권 공방으로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차관을 거쳐 한일 합의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1차장을 맡고 있던 조태용 미래한국당 대변인은 "'윤미향 이사장에게 사전 설명을 했다'라는 외교부의 입장을 분명히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더불어시민당과 시민당의 모(母)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윤 당선인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12월 28일 TV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의 발표를 보고 합의 내용을 알았다'는 취지로 적은 뒤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일부 회계 표기 부정확성 사과…"기부금은 투명하게 집행"
정의연은 회계 투명성 논란과 관련해 일부 표기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었다며 사과했습니다.
정의연이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한 명세서를 보면 기부금 개별 지출 항목 수혜 인원으로 '99명', '999명', '9천999명'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정의연 관계자는 "데이터가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부족한 인력으로 일을 진행하면서 어려움이 있어 실무적으로 그렇게 편의적으로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일각의 의혹과 달리 기부금을 투명하게 집행했다는 점은 분명히 했습니다.
정의연 측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기부수입 총 22억1천900여만원 중 41%에 해당하는 9억1천100여만원을 피해자지원사업비로 집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만이 피해자 지원사업은 아니다"며 "피해자 지원사업은 건강치료지원, 인권·명예회복 활동 지원, 정기방문, 외출동행, 정서적 안정 지원, 쉼터 운영 등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영수증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라는 일부 언론의 요구에는 "우리도 인권이 있는 사람들인데 너무 가혹하다"고 반발하면서도 "연대하고 함께해준 분들에게 의도치
일각에서는 명세서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숫자가 여전히 석연치 않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피해자지원사업비로 집행했다는 41% 이외의 기부수입을 어디에 썼는지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