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로 전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한때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엿보던 프랑스와 영국 정치 지도자들이 최근 중국에 등 돌리는 공개 발언을 하면서 국제사회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에는 프랑스 대통령과 영국 외무부 장관이 중국 비난에 나섰다. 중국이 이미지 변신 차원에서 방역용 마스크와 진단 키트 지원 등 '코로나 외교'에 나서기는 했지만 공산당 지도부의 국정운영 체제를 대외적으로 선전하며 왜곡된 주장을 퍼트리자 그간 중국 통계에 대한 불신과 중국 측 태도에 대한 반발감이 커진 탓이다.
16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이내셜타임스(FT)인터뷰에서 "중국이 코로나19대처를 잘했다고 보는 것은 뭘 모르는 아주 순진한(so naive) 관점"이라면서 중국을 직접 언급해 비판했다. 코로나19사태가 중국같은 권위주의 체제에 비해 서구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내게 만든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대통령은 "(코로나19사태와 관련해)중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투명하게 알 수 없다"면서 중국 체제에 대한 불신을 시사했다. 대통령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정부를 비판할 수 있지만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진실이 억압된다"면서 공산당 지도부가 통제하는 중국의 코로나19관련 중국 통계는 믿을 수 없다고 봤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중국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했다. 대통령은 "지금 유럽연합(EU)는 중국에 의료장비와 약품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면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시민들은 경제적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제 주권은 의료부문을 비롯해 지구 온난화 시대에 대응하는 전기차 활성화와 마약 문제 대응 같은 과제에 대해 필요한 것"이라면서 "코로나19사태는 지금처럼 지나치게 금융에 치우친 세상(hyper-financialised world)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마크롱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파리에 국빈방문 초청해 경제협력을 이야기했었다. 또 중국은 '코로나19 발원지 논란'을 부각하면서 지난 달 10일 시 주석의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인민 승리'를 선언한 후부터는 남유럽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동유럽 세르비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을 향해 '코로나 원조' 외교에 나섰었다. 이들 국가는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중심 경제협력 벨트) 협약을 했거나 중국이 관심을 가지는 나라들이다.
불과 1년도 안된 시점에 '코로나 원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중국에 등 돌리게 된 데는 중국 대사관의 '가짜 뉴스' 사건이 결정적이라는 게 영국 BBC의 해석이다.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 주재 중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에 '사실 뒤집어보기-신종폐렴유행에 대한 프랑스 주재 중국 외교관의 관찰'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면서 "양로원 사람들은 긴급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프랑스 정부 지침에도 불구하고 양로원 직원들은 야밤에 양로원(Ehpad)을 버리고 달아났다. 노인들은 방치된 채 굶주려 죽어갔다"고 적었다.
이어 중국 대사관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게시글을 통해 세계보건기구(WHO)를 옹호하면서 프랑스를 비난했다. 해당 게시글은 "WHO가 서구 국가들에 포위돼 공격받고 있으며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이여수스 WHO사무총장은 개인적인 신상 모욕까지 받고 있다"면서 "대만은 프랑스 의회 의원 80명의 공동 지지를 받아 WHO총장을 '검둥이'(negro)라고 모욕하고 있다. 프랑스 의회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사건이 일파만파 되면서 프랑스 외무부는 14일 류사예 파리 주재 중국 대사관을 소환했다. 현지 영문 매체 프랑스24에 따르면 외무부는 중국 측에 대해 "양국 간 관계에 비추어 격이 맞지 않는 질 떨어지는 발언"이라고 엄중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자오리젠 중국 외무부 대변인은 "그것은 프랑스의 오해"라면서 "중국은 프랑스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발표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중국 측의 이런 태도는 프랑스 내 반감을 가져왔고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강경 발언을 한 이유다.
유럽 내에서는 중국 측의 발언은 의도가 분명한 '가짜 뉴스'라는 비난이 커지고 있다. 중국 외무부는 파리 주재 중국 대사관이 프랑스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Ehpad'(Etablissement d'hebergement pour personnes agees dependantes)는 프랑스의 양로원을 흔히 지칭하는 프랑스 줄임말이다. 외신은 중국 대사관이 언급한 것은 스페인의 양로원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런 식으로 사실이 틀린 것을 대사관이 홈페이지 글로 올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프랑스 의회는 대만을 통해 WHO사무총장을 '검둥이'로 비난하지도 않았다는 게 프랑스 입장이다. 중국 편향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대만으로부터 인종차별을 들었다고 주장한 것부터도 논란거리다. 대만 외무부는 WHO총장 주장에 대해 "그의 주장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대만을 중상하는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반박했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도 직접 나서 "수년 동안 대만은 중국의 견제로 WHO같은 국제기구에서 배제돼 차별과 고립이 어떤 감정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총장이 중국의 압력을 이기고 대만에 와보면 대만 국민이 진정한 차별 희생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중국이 알면서 오히려 프랑스와 대만을 비난한 셈이다.
파리 주재 중국 대사관 게시글 사건을 두고 영국 가디언지는 "이런 것은 온라인 사회연결망(SNS)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국의 소위 '늑대 전사'(wolf warriors) 공격의 일환"이라면서 " 요즘 중국 외교관들도 선호하는 온라인 비난전으로, 늑대 전사는 2015년 중국에서 인기 끈 액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한편 같은 날 15일 영국에서는 도미니크 라브 외무부 장관이 "중국과 예전같은 비즈니스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장관은 "중국이 코로나19 조기 대응에 성공했다는 것 대해 심층적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불신감을 드러냈다. 이는 영국과 중국 간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보수당 지도부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영국 텔레그라프지가 전했다. 보수당은 영국 제1당으로 라브 장관과 보리스 존슨 총리 소속 정당이다. 톰 투겐트하트(보수당) 영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무역만 우선 순위로 삼고 중국과 관계를 강화한 대가를 지금 치르게 됐다"면서 "중국 때문에 전세계인의 건강이 위험에 빠졌다"고 중국을 비판했다.
앞서 7일 영국 공영방송 BBC도 중국 비판에 나선 바 있다 .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은 BBC 인터뷰에서 "중국의 코로나19 보고 중 일부는 바이러스의 규모와 성격, 전염성 측면에서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BBC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뤘다는 중국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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