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분양한 개포 프레지던스자이 견본주택에 인파가 몰려 있다. [사진 제공 = GS건설] |
31일 한국감정원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날 1순위 청약을 받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 '르엘 신반포(신반포14차 재건축)'는 일반분양 67가구 모집에 8358명이 청약했다. 평균 경쟁률은 124.7대1, 최고 경쟁률은 8가구 모집에 3267명이 몰린 전용 100㎡에서 408.3대1을 기록했다. 이 아파트는 가장 작은 평형(전용 54㎡)도 분양가격이 10억1400만~11억3700만원으로 모든 가구에서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지역 분양 물량 중 상당수가 중도금 대출이 전혀 안 되는 9억원 이상이라는 점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3채 중 1채는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는 9억원 초과 아파트인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9억원 이상 분양 주택은 2016년 11·3 부동산대책부터 중도금 대출이 막혔고, 지난해 12·16 대책에서 9억원 초과 주택 구입 시 전세자금 대출도 전면 제한한 만큼 당첨이 되더라도 현금이 충분한 부자가 아니면 입주가 불가능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분양가 억제 정책과 대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당장 자금 마련이 가능한 현금 부자만 시세보다 수억 원 낮은 '로또 아파트'를 독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약보합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로또 분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연봉 수억 원대 고소득자들조차 굳이 주택을 구입하지 않고 로또 청약만 노려보겠다는 이들이 많다. 재작년 9·13 대책 발표 직후 수도권 대형 아파트를 매도한 금융업 종사자 A씨는 "조정 국면의 서울 주택을 사기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일반분양 추첨을 노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해 7월 말부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현금 부자만을 위한 강남권 로또는 기대차익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강남지역은 분양가상한제로 3.3㎡당 분양가격이 현재 4800만원대에서 4000만원까지 떨어진다고 가정해도 전용 59㎡ 기준 분양가격이 10억원이다. 전용 84㎡는 13억~14억원의 현금이 있어야 한다. 분양가상한제는 서민에게 싼값에 주택을 공급하는 게 목적이지만 정작 일반 중산층 서민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가격인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 논의 때부터 일각에서는 주택채권입찰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정부는 채권입찰제를 적용하면 주택을 싸게 공급하는 의미가 사라진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국토교통부 주택기금과 관계자는 "채권입찰제 도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격이 9억~10억원이 넘는 고가 분양주택에 한정해서라도 채권입찰제를 도입해 분양 이익을 환수하거나 청약 참가자의 자산 기준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강남처럼 분양가격이 높은 특정 지역에 한해 일정 수준 이상의 고소득자나 자산가들이 청약에 참여하면 채권입찰제를 도입하고, 그 자금으로 공공주택을 짓는 데 활용하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주택채권입찰제 : 공공택지에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 공급된 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를 대상으로 주변 시세와 분양가격이 30% 이상 차이 날 경우 분양받는 사람이 분양대금 외에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하도록 하고, 채권매입액을 많이 써낸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분양권을 주는 제도.
[최재원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