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독신제'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92세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저서를 둘러싼 논란이 책 저자 표기 관련 진위 공방으로 번졌습니다.
ANSA 통신 등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의 개인 비서인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는 현지시간으로 오늘(14일) 베네딕토 16세의 승낙 없이 책 표지에 공저자로 기재됐다며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겐스바인 대주교는 실제 책을 집필한 74세로버트 사라 추기경이 사제독신제와 관련한 저서를 준비한다는 것을 전임 교황도 알고 있었으며, 원한다면 책에 활용해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사제직에 대한 에세이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공저자로 전임 교황의 이름을 올리는 것을 승인한 적 없고, 발행 전 최종본의 표지와 내용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저자에서 베네딕토 16세의 이름을 빼고 도입부 및 결론 부분에 담긴 전임 교황의 사인도 삭제해달라고 사라 추기경에게 요청했다고 부연했습니다.
아울러 이는 베네딕토 16세 본인의 뜻이라고 겐스바인 대주교는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이날 베네딕토 16세를 수행하는 신원 미상의 인물을 인용해 전임 교황이 사라 추기경과 책을 공동 집필·출간하는 일에 결코 동의한 적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바티칸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톨릭 보수주의자들이 진보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격하고자 노쇠한 전임 교황을 악의적으로 이용해왔다며 책 출간의 저의를 의심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사라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와 직접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으며 책의 내용과 공저자 표기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고 보도 내용을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사라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을 단독 저자로 하고 베네딕토 16세가 집필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저자 문제를 정리하되 책의 내용은 단 한 자도 수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라 추기경은 다만 자신의 책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라면서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애착은 그대로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복종은 절대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라 추기경은 현재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직을 맡고 있는 보수 성향의 고위 성직자입니다. 경신성사성은 가톨릭교에서 행하는 전례의 규율을 정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부처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출판사 측은 애초 현지시간으로 내일(15일) 이 책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했으나 저자를 둘러싼 논란 등으로 발간 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당 출판사는 현재 저자, 원고 내용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삼갔습니다.
앞서 베네딕토 16세와 사라 추기경이 공저자로 기재된 '마음 깊은 곳에서: 사제, 독신주의 그리고 천주교의 위기'라는 제목의 책 내용 일부가 현지시간으로 그제(12일) 프랑스 언론을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책에서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사제가 혼인하지 않는 사제독신제의 전통을 깨려는 시도에 침묵할 수 없다며 그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심각한 사제 부족 현상을 빚는 남미 아마존 등에 사제독신제의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적이 있는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입장과 상충합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계에선 전임 교황과 현직 교황이 사제독신제를 두고 초유의 대립 사태를 빚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자진 사임 당시 자신의 후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절대적 복종'을 맹세하며 세상 뒤에 숨어 조용히 지내겠다는 언약을 스스로 깼다는 비판론도 제기됐
교리 등에서 보수적 관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으나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등을 이유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60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