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 부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산정한 올해 이 회장 재산은 168억 달러, 우리 돈으로 19조8500억원쯤 된다. 전 재산이 10억원인 중산층 A씨에게 10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A씨가 100만원에 대해 느낄 부담의 크기는 20조원 자산가에는 200억원이 될 것이다. A씨가 점심값으로 1만원을 지출할때 느끼는 부담을 이 회장이 똑같이 느끼려면 2억원짜리 점심을 먹어야 한다. 이 회장보다 훨씬 돈이 많은 빌 게이츠나 제프 베조스도 점심값으로 2억원을 내지는 않는다. 그들이 부자라는 이유로 맥도날드가 빅맥 세트에 단돈 1센트라도 더 청구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물론 팁을 더 줄 수는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18일 법무부와 여당이 입법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재산비례벌금제'는 말 그대로 재산 크기에 따라 벌금을 따로 매기는 제도다. 부자에게는 '껌값'도 안되는 벌금이지만 없는 자는 노역으로 치러야 하는 모순을 고치겠다는 취지다. 핀란드를 비롯해 독일, 오스트리아 등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몇몇 국가들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들에선 볼 수 없는 제도다. 비상식적, 비현실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재산 10억원 A씨가 교통사고를 내 벌금 100만원을 문다고 치자. 병석의 이건희 회장이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같은 사고가 났다고 가정했을때 100만원 벌금이 A씨에게 미친 징벌 효과를 거두려면 벌금 200억원을 때려야 한다. 이거 말되나? 설마 그렇게 기계적 비례로 가기야 하겠나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기계적 비례가 아니라면 그것도 문제다. 당사자의 재산에 걸맞는 부담을 지워 '실질적' 공평을 기한다는게 이 제도의 거룩한 취지다. 재산에 정확히 비례하지 않으면 취지에 안맞다. 거기서 또 여러 불공평이 빚어질 것이다. 또한 불평등한 것이 어디 재산 뿐인가. 형법은 범죄의 형량을 나이, 성별, 건강에 따라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 죄 있으면 건강한 20대 청년이든, 노쇠한 70대 할머니든 똑같이 형을 살아야 한다. 이건 실질적 불공평 아닌가. 다음으로 현실적 문제. 개인 재산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벌금 산정을 위해 매번 국세청을 동원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장롱속에 현금만 수억원씩 쌓아둔 숨은 부자들도 있다.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유리지갑들만 또 봉이 될 것이다. 이런 불공평은 불공평이 아닌가.
이 제도가 시행됐을때 가장 큰 덕 보는 것은 정부다. 가뜩이나 세금은 덜 걷히고 돈쓸데는 많은데 얼마나 쏠쏠하겠나. 막연히 ‘부자들’을 타겟으로 정해놓으면 일반 국민들은 좋아할 것이다. 일단 자기들은 해당사항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부자 vs 비부자'의 편가름을 참 잘 활용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벌금 내는 것도 속상한데 재산상황까지 정부가 들여다본다. 괜찮은가? 회사 동료 누구는 같은 실수로 100만원 벌금을 냈는데 나는 50만원을 냈다. 환호해야 하나. 아니면 자존심 아파해야 하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구소련도, 북한도 안 평등하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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