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개발이 해제된 신길6구역 일대. 골목마다 신축 공사 중인 원룸·빌라가 보였다. [박윤예 기자] |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510 일대. 이곳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신길뉴타운'으로 불리며 아파트촌으로의 변신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지금은 기대했던 아파트 대신 골목마다 원룸·빌라 신축 공사판으로 변했다.
골목길을 청소하던 한 60대 노인은 "20년을 여기서 살면서 새 아파트 한번 들어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죽기 전에 영 글렀다"며 혀를 찼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세운 소위 '서울시 뉴타운 출구전략' 속에 2017년 정비구역에서 직권 해제된 후 난개발로 몸살을 치르고 있는 현장인 셈이다.
정비구역 해제 후 줄잡아 빌라 수십 개동이 생겨났다. 신축 빌라가 들어서면 재개발 지정요건인 노후도를 맞추기 어려워지는 데다 설사 어렵사리 다시 추진된다 해도 신축 빌라는 보상하려면 수백억 원씩 보상비용이 '확' 뛰어 재개발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이 일대는 정비구역 해제 전 신길뉴타운에서 가장 알짜 땅 중 하나로 꼽혔다. 신길뉴타운 구역 내에서 평지로만 이루어져 있고 서울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세권인 데다 신림동에서 여의도를 잇는 경전철 신림선(2022년 개통) 역세권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는 됐지만 경전철 공사는 진행 중이다.
신길뉴타운(재정비촉진구역) 내 16개 구역 중 가운데 정비구역이 해제된 곳은 총 6개 구역(1·2·4·6·15·16구역)이다.
신길6구역과 가장 가까운 신길5구역만 하더라도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고, 7구역은 이미 새 아파트가 입주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새 아파트 병풍 속 외딴섬처럼 낙후된 채 남아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연구원의 지난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총 683개 정비구역 중 정비사업이 추진되는 곳은 262개이고, 정비구역 해제 결정이 난 곳은 393개에 달한다. 정비구역 해제 지역은 재개발 중단으로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이 늘어나 치안 공백도 우려된다. 빈집 문제가 없는 곳은 여지없이 신길6구역처럼 신축 원룸·빌라가 우후죽순 들어선다. 재개발이 해제되면 동시에 건축허가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규제가 풀리기 때문이다.
신축 빌라를 짓겠다는 건설업자들이 달려들면서 몇 개월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껑충' 올라버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면서 전·월세 가격이 뛰어오르고 결국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영세 세입자들이 줄줄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또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의 가장 큰 논리가 '주민 갈등을 해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중지된 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신길6구역은 전체 토지 소유자 309명 가운데 245명이 참여해 찬성 133표, 반대 102표로 사업 찬성자가 전체 소유자 50% 미만인 이유로 2017년 8월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서울시는 2016년 3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조례'를 개정해 서울시장 직권으로 정비구역 해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재개발 정비구역에 주민 3분의 1이 해제를 요청하고 찬반투표를 통해 찬성표가 전체의 50%에 미치지 못하면 서울시장이 직권으로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 종전에는 주민 50% 이상이 해제를 요청하고 사업 반대표가 50% 이상이어야 정비구역 해제가 가능했는데 쉽게 해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실제 재개발에 반대했던 한 주민은 "재개발을 재추진해 아파트를 짓기보다는 지역별로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 개발을 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 상당수는 투표 결과를 두고 서울시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재개발 찬성파에서 정비구역 해제동의서의 진위를 의심하며 지문 감식을 지난달 의뢰했다.
서울시는 뉴타운 해제구역에 대해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민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시가 올해 4월 저층주거지 집 수
박영모 신길6구역 추진위원장은 "부동산 값이 오르면서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소송이 끝나면 바로 조합설립 동의서를 다시 받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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