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목표로 이 방송을 시작했다면 절대 할 수 없어요. 그저 한 1~2년 생각했는데 사연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마침 제가 갱년기라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그렇게 지나왔는데 벌써 20년이 됐네요. 그 안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20년이 얼마인지 몰라요. 그냥 하루하루가 쌓인 것일 뿐이죠. 이 세상 어느 대학 보다 여성시대에서 학사 학위를 따고 또 따고 공부한 기분이 듭니다.”
양희은이 ‘여성시대’ 진행 20주년을 맞은 소회를 밝혔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양희은 서경석 박금선 작가 강희구 PD가 참석해 프로그램 뒷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양희은은 20년간 ’여성시대‘를 놓치 못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안 보이는 공감의 파도, 이게 여성시대의 힘이고 위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만약 38살쯤 했다면 감회가 클 수 있겠는데, 라디오를 한 20년 했잖아요. 이건 그만큼 내가 ‘여성시대’를 사랑했다는 거죠. 힘들고 지치고 고단하고 아침마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콘서트를 할 때도 ‘여성시대’를 해왔는데 긴 세월의 짝사랑 같습니다.”
‘여성시대’를 20년간 진행하면서 그는 5만 8천여통의 사연을 접했고, 또 읽어내려갔다. 어느 하나 소중하고 특별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양희은은 희재 엄마의 사연을 망설임 없이 꼽았다.
“어떤 사연도 죽음만은 못하죠. 살아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죽으면 엄연한 경계가 생기니까요. 희재 엄마의 편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암 말기 환자가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3일 간격으로 그 힘든 몸으로 써내려간 몇 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청취자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양희은은 “그 사연이 소개되면서 진짜 뜨거운 마음들이 합쳐져서 불같이 쇄도했다. 어떤 분은 자신의 휴가를 반납했고, 소정의 돈을 보내오는 분들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양희은 역시 얼마 후 숨을 거둔 ‘희재엄마’를 위해 당시 데뷔 30주년 기념음반에 ‘그대가 있음에’란 곡을 헌사했다.
1975년 임국희의 여성살롱으로 시작된 ‘여성시대’는 1988년부터 지금의 ‘여성시대’로 이름을 바꾸어 청취자들과 만났다. 1999년 6월 7일부터 마이크를 잡은 양희은은 오는 7일 ‘여성시대’ 진행 20주년을 맞는다.
이날 양희은은 MBC 라디오 ‘골든 마우스상’을 수상한다. ‘골든 마우스’는 오랜 세월 한결같이 MBC라디오와 함께해온 최고의 진행자들에게 수여하는 헌사다. 양희은은 이종환, 김기덕, 강석, 김혜영, 이문세, 배철수, 최유라, 임국희에 이어 ‘골든 마우스상’을 수상하게 됐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의 고개를 두 번이나 넘어, 20년을 청취자들과 함께 해온 ‘여성시대’. 앞으로 양희은은 얼마나 더 오래 청취자들을 만나길 희망할까. 양희은은 “저는 계약을 한 적이 없다. 그만두면 그만두는 거다. 만약 ‘여성시대’라는 자리를 힘으로 알고 휘두르려 한다면 그때는 마이크를 내려놔야 한다. 그때는 옆에 친구들한테 지적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성시대’는 시대와 세대가 바뀐 지난 20년간 독보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비결을 묻자 양희은은 이렇게 답했다.
“‘여성시대’는 사심이나 욕심을 갖고 보내는 편지가 아니에요. 가슴으로 쓰는 편지죠. 아무데도 하소연 할 곳 없어 보내주신 사연들이에요. 그래서 MC로서 기술은 필요 없어요, 저는 전달을 정확히 하려고 애썼습니다. 사투리가 나오면 사투라도 섞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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