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하세요~."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이 소리가 참 좋다. 밥상에 남편이 즐기는 봄동과 참나물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올해 환갑을 맞은 이수동 작가(60)는 "예전에는 행복을 바깥에서 찾았는데 지금은 가족 식사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 기쁨을 그림 '즐거운 우리 집'으로 표현했다. 구름 위에 둥실 뜬 화분에 봄동 잎을 나무처럼 빽빽하게 심어놨다. 그 아래서 남녀가 서로를 바라본다. 창문이 난 화분은 그의 집을 은유한다.
서울 인사동길 노화랑에서 만난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봄동을 보면서 숲을 연상했다. 우리집에 핀 봄을 보여주고 싶어 봄동 화분을 처음 그렸는데 앞으로 계속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참나물이 가득찬 화분 그림 '풀잎사랑'도 처음 그렸다. 잎사귀 맨 꼭대기에는 얼굴이 빨개진 남녀가 손을 잡고 마주보고 있다. 두 작품을 8~25일 그의 30번째 개인전 '꽃길을 걷다'에 펼친다. 두 작품 외에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자작나무와 꽃 그림 등 40여점을 건다. 돋보기를 쓰고 예전보다 더 밀도 높게 캔버드 옆면까지 그렸다고 한다. 작가는 "일종의 베란다 확장 같은 것이다. 여러 각도에서 봐도 좋은 그림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변화의 동력은 '나도 이제 대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다. "시중에 나온 내 그림을 내가 다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력해보겠다. 경매에 나온 내 그림을 보면 시집간 딸이 소박 맞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 다 되사들일 수 없고 그림이 안 돌아다니도록 그리고 싶다. 최대한 공을 들여서 그리면, 한 번 산 고객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거대한 목표를 세운 후 하루 종일 일산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린다. 술 마시고 여행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젊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많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운전도 골프도 안 하니까 내 몸은 하루 하루 야무지게 그림만 그린다. 하루 8시간 그리면 화가, 10시간 그리면 열심히 하는 화가, 12시간 쏟으면 폼 나는 화가가 되지 않을까. 내 그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주 그림과 글을 올리다보니까 어느 순간 공인이 되서 어깨가 더 무겁다."
그는 그림과 대화하면서 작업한다. 짧은 스토리를 만든 후 감독이 배우에게 지시하듯이 화폭에 인물을 그린다고. 글솜씨가 좋아서 그림 에세이집 '토닥토닥 그림편지' '오늘, 수고했어요' '다시 사랑한다면' 등을 펴냈다.
40여년간 화업이 결집된 이번 전시작 중에 미국 컬러 전문기업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색 '리빙 코랄(Living Coral)'이 유독 많다. 오렌지와 핑크가 적절히 섞인 바닷속 산호색이다. 작가가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2년간 그린 '밝은해가 떴습니다' 배경과 전시장 일부 벽면을 코랄 핑크로 장식했다. 개인전 주제 '꽃을 걷다'와 통하는 꽃분홍색이다. 작가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제 꽃길을 걷고 싶다는 희망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랜 무명 생활 끝에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이 그린 그림 실제 화가로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 일약 '완판 작가' 반열에 올랐다. 2006~2007년에는 전시장을 오픈하기도 전에 줄을 서서 그림을 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대구에서 월 100만원도 안 되는 벌이로 빠듯하게 살다가 2004년 서울로 상경했다. 고생한 탓에 나와 아내는 지금도 택시를 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6년전 일산에 집을 산 후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8~25일.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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