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전셋값의 동반 하락에 750조원으로 추정되는 '전세부채'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곳곳에서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일부 지역에선 집을 팔아도 보증금에 모자란 '깡통전세'마저 나타났습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국민은행 조사 기준으로 13주 연속 하락했습니다. 부동산시장이 급랭한 올해 들어 하락 폭이 커져 지난달 셋째주 0.08%, 넷째주 0.07% 내렸습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 첫째주(-0.10%)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낙폭입니다.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이번 달 첫째주에 0.08% 하락하면서 지난해 11월 둘째주 이후 13주 연속 약세를 보였습니다. 한국감정원은 올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이 지난해보다 1.0%, 전셋값은 2.4% 내릴 것으로 지난달 예측했습니다.
집값 하락기는 2010년대 초반에도 잠시 있었지만, 당시엔 전셋값 상승이 받쳐줬습니다. 최근 상황은 5∼6년 전과 양상이 다릅니다. 주택금융연구원 방송희 연구위원은 "집값·전셋값의 동반 하락 현상이 나타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였다"고 말했습니다.
집값과 전셋값의 동반 하락으로 이른바 전세부채, 즉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과 세입자가 은행에서 빌린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와 주택금융연구원 고제헌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국의 전세금융과 가계부채 규모' 논문에서 전세부채 규모가 '보수적 가정하에' 750조원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정부의 인구주택총조사·주거실태조사와 국민은행 자료 등을 토대로 한 이 논문은 2005년 이후 전세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했고, 2010∼2015년 36% 급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교수와 고 연구위원은 논문에서 "만성적 저금리 정책과 만성적 부동산 경기부양의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저금리 장기화와 정부의 규제 완화가 집값·전셋값을 급격히 끌어올렸고, 부동산 투기심리가 보태져 전세부채 '폭탄'을 키워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세부채가 더해진 가계부채가 2천200조원에 이르며, 금리 인상과 집값·전셋값 하락 등 대내외 충격과 정책실패가 일어나면 대규모 금융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아직 '위기'가 목전에 닥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역전세난이 전국에 걸쳐 발생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최종구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가계부채관리점검회의'에서 "전세가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 발생으로 전세자금대출 부실화 및 세입자 피해 등 리스크 요인이 상존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셋값 하락으로 만기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려고 대출을 받거나 집을 팔아야 한다는 집주인 등 부동산 카페에 올라오는 '사연'들이 이미 전반적 현상이라는 점을 당국도 공인한 셈입니다.
전세대출은 총 전세부채 가운데 90조원으로 추정됩니다. 5대 시중은행 기준으로 지난해 말 63조원입니다. 2016년 말에는 33조원이었습니다. 2년 만에 약 2배로 급증한 것입니다.
역전세난은 공식적인 수치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울보증보험과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 전세대출 보증기관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보증금은 지난해 1천607억원으로, 2017년(398억원)의 4배를 넘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역전세가 광범위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집값이 급락한 일부 지방에선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못 주는 깡통전세도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역전세·깡통전세가 전국적으로 확산,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될 수
상황이 심각해질 경우 집을 담보로 보증금 일부를 빌려주는 '역전세대출'이나 경매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대출자에게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권유하도록 은행들에 지시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