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여론이 팽배했고, 그래서 정부는 처벌 수위를 높이고 체육계 성폭력의 뿌리도 뽑겠다며 2008년 2월 '성폭력 지도자 영구제명'을 명시한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2010년엔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가 여중생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고, 2013년엔 역도 대표팀 감독이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지요.
그러자 또 대책이 나왔습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며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또 '제 식구 감싸기'의 극치였습니다.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를 통해 최근 5년 동안 접수된 폭력·성폭력 사건을 봤더니, 가해자가 영구제명을 받은 비율이 9.7%에 그쳤거든요. 절반 정도가 '경고·견책·근신'이라는 경징계로 끝났고, '무혐의'나 '징계 없음'으로 마무리된 것도 4건이나 됩니다. 대체 무관용은 어디 있는 걸까요?
대한체육회의 조사가 이처럼 황당하게 나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수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하면 1차로 조사하는 곳이 가해자가 속한 체육 단체들이거든요. 빙상선수가 신고를 하면 빙상연맹이 1차 조사를 하는 식이죠. 체육계 바깥에서 강력하게 개입을 해도 조사가 쉽지 않은데 가해자가 속한 기관에서 사건을 조사하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입니다.
미국은, 체조선수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전 국가대표 주치의에게 징역 60년, 175년, 125년 해서 총 360년형이 선고될 만큼 처벌이 무겁습니다. 미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미국체조협회장도 줄줄이 물러났고, 가해자가 교수로 있던 대학은 피해 학생들에게 5400억 원의 배상금을 물게 됐지요.
상담과 교육 강화, 전수조사, 가해자 엄벌. 지난 8일 심석희 선수의 폭로 이후, 단 하루 만에 나온 문체부의 대책은 10년 전부터 나왔던, 그것을 또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데 그쳤습니다. 뭐 했는지, 이제야 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국회도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남성 중심, 선배 중심의 우리나라 스포츠계 분위기상 운동선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심석희 선수가 자신의 피해를 공개한 절박함을, 우린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이번에도 바뀌지 않으면 희망은 아예 없어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