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걸 담았다고 해서 매번 ‘종합선물세트’가 되진 않는다. 균형을 잃고 욕심을 내는 순간, 본질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영화 ‘골든 슬럼버’의 경우처럼 말이다.
강동원을 주축으로 김의성, 한효주, 김성균, 김대명, 윤계상 등 탄탄하고도 흥미로운 라인업으로 기대를 모은 ‘골든 슬럼버’(감독 노동석)가 지난 7일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광화문에서 벌어진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한 남자의 도주극을 담는다.
한 때 아이돌 스타를 위험에서 구해주며 ‘용감한 시민상’까지 받았지만, 한순간 대통령 후보 암살범으로 지목된 택배기사 ‘건우’(강동원)와 그를 끝까지 믿어 주는 친구들, 무자비하게 주인공을 쫓는 비밀요원들과 이 모든 판을 짠 배우세력까지 얽히고설켜 있다. 쫓고 쫓기는 살벌한 도주극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전혀 다른 결의, 친구들 간 우정과 믿음에 대한 따뜻한 휴먼 극으로 귀결된다.
주재료와 부재료, 여기에 기막힌 양념까지 모두 준비됐지만 안타깝게도 배합의 실패다. 너무 많은 걸 담으려다 ‘스릴러’라는 본질은 결국 흐려졌고, 전혀 결이 맞지 않은 결론과 메시지를 위해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과도하게 집어넣었다.
스릴러의 쫄깃함을 한창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주인공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가 급작스럽게 끼어들고, 감상에 좀 젖어들까 싶으면 또다시 스릴러의 옷으로 급전환된다. 완급 조절의 정도를 넘어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이 같은 부조화가 자주 반복돼 신선하고 다채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도주극의 몰입을 깬다. 착한 메시지로 귀결되기 위한 부자연스러운 장치들이 자주 눈에 띄어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의 긴장감과 재미는 반감된다.
주인공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과도한 상황 설정만 있을 뿐, 그 이면에 숨겨진 거대 조직의 실체나 배후 인물들 간 연간관계, 냉혹한 현실 문제를 꼬집는 비판 의식도 단편적인 도구로만 사용돼 깊이감은 떨어진다. 전반적으로 주와 부의 구분 없이, 핵심 요소들을 과도하게 그리고 대충 버무려 조화롭게 하나로 녹아들지 못한다.
게다가 모든 캐릭터들의 성격이 일차원 적인데다, 꼬고 꼬아놓은 장치들에 비해 결말은 다소 유치하고 단순하다. 장면 장면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흥미로울 것들이 많지만, 이것들을 하나로 잇는 이음새가 전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짜임새나 사건 전개의 개연성이 떨어져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진지함도, 설득력도, 감성도 절반만 남은 모양새랄까.
광화문 세종로 한복판에서부터 홍제천의 지하 배수로에 이르기까지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며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독창적 볼거리나, 서울의 공간적 특성을 대표하는 주요 번화가에서 펼쳐지는 각종 도주씬, 강동원의 하드캐리와 김의성의 새로운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비틀즈부터 신해철까지 국내외 명곡들의 반가운 앙상블이나, 기존의 스릴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도 곳곳에 포진돼 있다. ‘한순간 세상이 주목하는 암살범이 된 한 남자의 도주극’
오는 2월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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