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의 주인공 독립운동가 박열은 기존의 영화들과 사뭇 다른 관점에서 일본을 본다. 하나의 '악의 덩어리'로만 여겨졌던 일본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쪼개어 인식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인 박열의 적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고 핍박받는 일본 민중은 오히려 그의 동지다. 이와 함께 영화는 그의 연인이자 사상적 동지인 후미코와 후네 등 양심적인 일본인들을 비중 있게 다룬다.
연극 '1945'는 해방 직후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주 전재민 구제소에 모여 기차를 타고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연극 말미 조선 사람들은 명숙에게 일본인인 미즈코를 기차에 태울 수 없다며 버리고 갈 것을 요구한다. 명숙은 결코 그녀를 버리지 않겠다고 답한다. 조선인과 일본인, 철전지 원수 같은 사이지만 미워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서로의 고통을 나누길 택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근현대역사물은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국뽕' 혹은 '신파'로 폄하되며 젊은 세대들에게 외면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작품들은 '일본인은 나쁘고 조선인은 착하다'는 고루한 국가주의적 흑백논리를 벗어버리고 그 아래 묻혀있던 신선한 소재들을 끄집어내며 호평 받고 있다. 영화 '박열'은 저예산 영화임에도 25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영화 '군함도'는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 30일 막 폐막한 연극 '1945'는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23회 중 폐막 무렵 10회가 전석 매진됐다. 웹툰 '인천상륙작전'과 '곱게자란자식'은 모두 평균 평점 9.9점을 기록했다. 모두 일제강점기시기를 일제와의 대결구도로만 다루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실제 삶의 풍경을 세밀하게 들여다본 작품들이다.
김연수 문화평론가는 "근현대사는 격동의 시기로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지만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냈던 이해당사자들이 많아 교과서에서도 많이 다루지 않을 정도로 예민한 소재였다"며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어느 정도 역사적 거리감이 생기면서 객관적으로 혹은 전혀 새롭게 보려는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공이나 애국과 같은 낡은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대들이 역사를 다르게 볼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현대사를 다룰 때는 신중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영화 '군함도'는 역사 왜곡, 한·일 외교 갈등 등 첨예한 이슈에 중심에 서게 됐다. 또한 당시 일제의 폭압을 밀도 있게 그려내기보다 조선인끼리의 다툼, 조선인 친일파 캐릭터 등을 강조한 점에 대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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