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도시정책은 그동안 '전임 시장' 리스크에 시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2년부터 추진된 도시정비사업인 '뉴타운' 사업,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한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세빛둥둥섬' 사업은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차질을 빚거나 무산됐다. 박원순 시장의 뒤를 이을 차기 시장은 또다시 서울시 도시개발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모른다.
시장의 이념적 성향과 철학에 따라 손바닥 뒤집히듯 변화하는 서울시 도시정책에 시민들은 혼란을 거듭해 왔고, 피해도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됐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고 35층 규제'를 포함한 서울시의 도시정책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공론화해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매일경제신문사·매경비즈 주최로 열린 부동산 핫 이슈 설명회에서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전문가 의견, 공청회 등을 통해 35층 규제문제를 다시 공론화하고 그 기준이 유지될 지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35층 층고규제의 근간이 되는 '2030도시기본계획'은 "변화하는 시대여건을 고려해 5년마다 서울플랜의 타당성 여부를 재검토하고 수정·보완하는 재정비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이 계획을 2014년 발표했으니, 2019년이면 수정이 가능하다.
박 위원은 "앞으로 2년간 충분하고 광범위한 공론화를 통해 백년을 내다보는 서울시 도시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며 "때문에 올해야말로 35층 제한을 포함한 다양한 규제를 풀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35층 층수 제한 등은 시장이 바뀐다 쉽게 변할 수도, 변해서도 안되는 일관된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 자체가 오세훈 전 시장 정책을 '박원순표' 사업으로 대체한 결과이다. 35층 층수제한 논란이 불거진 것도 불과 몇년 사이 시장이 바뀌면서 재건축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이전 정책을 하루 아침에 백지화하거나 180도 바꾼 도시정책을 두고 '일관된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다는 평가다.
더구나 2011년 박원순 시장 취임과 함께 준비된 2030도시기본계획의 준비과정에도 문제가 지적된다. 시는 "시민참여단 100인과 서울플랜 수립추진위원회라는 전문가단을 꾸려 초안을 마련했다"며 충분히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구 1000만명 서울의 도시계획 방향 수립에 겨우 100명의 시민이 참여한 것이 적절했는 지는 논란거리다.
또 35층 층수문제는 당시 검증 과정에서도 제대로 공론화가 안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석수 시의원에 따르면 2013년도에 실시한 시민의견 수렴 과정에서 총 192건의 의견서가 접수됐지만 층수 규제에 대한 내용은 단 한건도 없었다.
이 규제를 자문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의 '중립성'도 문제다. '2030도시기본계획'은 도계위 자문을 두 차례 받았다. 그러나 도계위 위원 대다수는 서울시장이 임명하는 전문가와 공무원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서울시 도시계획의 '사법부' 기능을 해야할 도계위가 시장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다보니 상호 견제가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도시계획위원 25명 중 18명은 서울시장이 임명한 전문가이고, 공무원 3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25명 중 21명이 시장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더욱 객관적인 정책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 시민 참여와 전문가 자문 방식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시계획위원회 구성의 경우 위원 임기를 서울시장 임기 이상으로 보장하고, 시장과 시의회 등이 나눠서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이정돈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
이 위원장은 "층수제한 기준 제정 당시에는 충분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시민단체, 학계 등 모아 공청회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마아파트 추진위는 35층 층수제한 완화에 대한 '전문간 100인 의견서'를 서울시에 제출할 계획이다.
[김기정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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