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렬한 반성은 있었지만 청사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학부생들 위주로 고만고만한 스마트폰 앱이나 만드는 ‘치킨집식 창업’에 매달리다간 조선·철강산업처럼 우리나라 대학도 함께 침몰할 것이다.”
지난해 7월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친뒤 1루 진출에 만족하는 타자’라고 통렬한 자기 반성문식 백서를 내놨던 서울대 공대가 1년 반만에 후속백서를 내놓으며 또다시 ‘참회록’을 썼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교수들까지 발벗고 나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끌고 나갈 ‘기술창업’에 나서지 않으면 대학도 몰락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경고한 것이다.
21일 매일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2016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교 백서 2’(부제-추종자를 넘어 선도하는 대학으로)에는 혁신을 멈춘 국내 산업계와 ‘추종자’에 머무르고 있는 국내대학 이공계가 마주할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가득했다.
집필진은 “한국 산업경쟁력이 추락하고 있고 중국 등 주변국은 우리를 쫓아오거나 이미 많은 분야에서 추월한 상태”라며 “특히 미래산업을 책임질 대학입학 학생수도 점점 줄고 있어 대안마련이 절실하다”고 후속백서 발간 이유를 밝혔다.
총 100페이지 분량의 백서출간을 주도한 이건우 서울대 공대 학장은 “산업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체감하는 위기도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며 “현 상태로는 조선·철강 등 성장동력을 잃은 국내 주력 산업들의 위기와 침몰해 가는 한국대학의 미래가 판박이 같다”고 하소연했다.
기업을 먹여살릴 신성장동력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같은 사회적 혼란까지 겹치며 지난해 공대백서를 내놓을때보다 대학가에서 체감하는 위기감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집필진은 “서울대가 공대 교수들의 연구를 통해 상당한 기술적 역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 사업화 성과가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해결책과 관련해 백서는 대학의 위기극복을 위해선 ‘창업 중심으로의 대전환’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공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이 창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신산업분야를 창출하는 ‘기술창업’ 부재를 꼽았다. 백서는 “현재 학내 창업은 교수·대학원생들이 아니라 대부분 학부생들 위주로 이미 포화상태인 앱 개발 등 서비스업 분야에 몰려있다”고 꼬집었다. 인공지능(AI)·자율운전차 등 핵심 기술분야 창업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백서는 또 “대학내 산학협력단 기술지주사 창업지원기관은 숫자만 많을 뿐 업무와 예산이 중복되는 등 중구난방”이라며 “창업 프로그램은 2년이내로 모두 짧고
위기 타개를 위해 서울대는 삼성 임원 등을 교수로 초빙하는 '겸무교수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백서는 이건우 공대 학장 요청으로 이종호 전기공학부 교수 등 교수진 25명이 10개월에 걸쳐 작성했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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