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신(神)’과 ‘혀(舌)’와 ‘불(火)’에 관한 이야기다. 신의 말씀을 저마다의 혀에 아로새긴 광인들이 스스로가 불이 되어 달려간다. 저주받은 세상을 향해 살육의 집행자가 되어 내달린다. 도처에 선홍빛 유혈이 낭자하고,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한다. 그렇다. 이곳은 지옥. 도처에 악(惡)이 만연하는 현실의 지옥이다.
소설가 백민석(45)이 열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문학과사회’에 연재했던 장편 ‘공포의 세기’(문학과지성사)다. 문학이 현실 사회에 대한 은유적인 텍스트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이 한 권의 책으로 몸소 입증해 보인 듯하다. 세기말의 묵시록적 분위기가 자욱한 소설 안에는 ‘헬조선’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최근 서울 합정역 인근 한 찻집에서 배 작가를 만났다. 초면에 먼저 물은 건 지난 10년간의 절필에 관해서였다. 1995년 등단 이후 8년 동안 7권의 책을 써낸 그였지만, 돌연히 잠적했던 그다. 그러던 그가 2013년에 복귀를 선언하더니 ‘혀끝의 남자’ ‘수림 연작’ ‘아트 워 연작’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무서운 속도로 작품을 쓰고 있다.
“성욕이 사라지듯 글쓰기 욕구가 사라지더군요. 10년의 직장생활 동안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어요. 일단 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컸지요. 그리고 타인과 이 세상에 대한 실망까지. 하여간 저를 낙담케 한 이 모든 걸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나긴 기간, 그는 책상에 앉으면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지만 텍스트와의 거리는 더욱 좁혀졌다. 그런 그가 네 인물을 거명했다.
“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 전집을 탐독했어요. 현대를 만들어낸 대륙 철학의 대가들이죠. 지금 이 세계의 정신적 기반을 19세기에 이뤄냈으니까요.”
그렇게 얻은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나름의 해답을 찾았냐”고 묻자, 의외로 “잘 모르겠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게 답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덧붙였다. “인간은 한 두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겠더군요. 워낙 복잡다단한 존재라는 게 저의 최종적인 깨달음이었요.”
그래서일까. 소설 속 인물들의 살인 동기는 저마다 불분명하다. 적(敵)그리스도, 절대악의 현현이라 할 1984년생 ‘모비’는 도심의 무고한 사람들을 도살하고, 거기에서 비롯하는 쾌(快)에 도취된다. 평범한 존재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모비’의 전철을 밟게되는 ‘경, 심, 령, 효, 수’도 마찬가지다.
“현 사회가 죽음을 가치 없게 바라보진 않던가요. 더 이상 죽음이 값지고, 숭고하지 가 않아요. 길 가다 묻지마 살인을 당하고, 시위에 나가 물대포 맞고 스러져요. 가습기 살균제로 다수가 개죽음을 당하고요. 현대인들이 마주하는 죽음의 실상이죠.”
늘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응시해온 그다. 누군가가 희망을 노래할 때면, 그는 그 이면을, 보다 근원적인 어둠을 바라봤다. 그가 현 사회는 마치 “지옥의 문턱에 놓인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전체적으로 ‘공포’에 지배당하는 것 같아요. 세기말적 공포가 한 세기가 지나면 해소돼야
인터뷰 말미, 그래도 한 번 묻고 싶었다. 언젠가 희망적인 소설을 쓰진 않을 텐지. 그가 씨익 웃더니 되물었다. “희망이 없는데 희망을 어떻게 쓰지요?”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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