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77·고등고시12회)이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수사의 또 다른 핵으로 등장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그 동안 이른바 ‘비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고 특히 최순실씨(60·최서원으로 개명·구속)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55)이 16일 검찰 조사에서 “김 전 실장을 통해 최순실씨를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진실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검찰은 최씨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김 전 실장의 주장 등을 근거로 그가 김 전 차관 비리 의혹 등에 관련된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조만간 김 전 실장을 불러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다.
또 김 전 실장은 최 씨를 통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차움병원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야당은 김 전 실장을 최씨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핵심 인물중 한명으로 보고 향후 국정조사나 특검 대상으로 불러 세우기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박정희-박근혜 정부 복심
김 전 실장이 현 정부의 실세에 급부상한 것은 2013년 8월이다. 초대 비서실장인 허태열 씨에 이어 두번째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 2015년 2월까지 박근혜 정부의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했다. 그는 1974년 공안검사 시절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문세광을 수사했고,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이력도 있다. 정수장학회 1기인 그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의 초대 이사장도 지냈다.
그는 1992년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 당사자로 1996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박 대통령과는 지난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선거대책부위원장과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관계를 맺었다.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를 주도한 것도 그였다. 박 대통령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던 최씨와 알고 지냈다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됐지만 본인은 여전히 강력 부인하고 있다.
◆ 김 “비선실세 없다”
김 전 실장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수사가 본격화된 이달 2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 참석해 “(비서실장때 최 씨 관련)보고를 받은 일이 없고, 최 씨를 알지 못한다. 만난 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비서실장 이전에 최씨를 안 적도 없는가”라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최씨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빌딩을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비서실장 재직 때에도 비선 실세 존재를 철저히 부인했다. 지난 2005년 1월 국회 운영위에 나온 김 전 실장은 문고리 3인방에 대해 “세분의 비서관들은 그야말로 비서일 뿐으로서 아무런 권한이 없다”면서 “외부 사람들과 국정을 논의한 게 전혀 없으며, 매우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정부에서는 (비선이)있었을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부는 소위 비선을 활용하는 일이 결단코 없다”면서 “비선 실세 운운하는데 ‘잃어버릴 실(失)’자의 실세는 있을지 몰라도 ‘열매 실(實)’자 실세는 없다”고 주장했다.
◆ 야당 “김기춘 진상조사”
야당은 김 전 실장의 연루 가능성이 커지자 분개하고 있다. 일단 국회 국정조사에서 김 전 실장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까지 증인으로 신청하려고 벼르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최순실 특검법’은 제 15조 규정을 통해 ‘세월호 7시간’ 의혹 뿐만 아니라 김 전 실장도 포괄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국민의당은 ‘김기춘 헌정파괴 진상조사위원회’를 긴급 구성하고 김 전 실장 의혹을 본격적으로 파헤칠 계획이다.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은 18일 “대한민국에도 진시황처럼 불로장생 욕망의 권력자와 실세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며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 김기춘 전 실장이 주인공”이라고 비판했다. 주 의원은 이어 “김 전 실장이 6개월간 수차례 걸쳐 초특급 VIP 대우를 받으면서 줄기세포 치료를 했다”며 “최씨 소유 빌딩에서 수시로 대책회의를 했는데도 김 전 실장은 ‘최씨를 전혀 모른다’고 발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정숙
[신헌철 기자 / 강계만 기자 / 이현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