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기업들이 철저히 회사채 시장을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미국 금리인상 이슈, 최순실 사태로 대변되는 국정 불안 등 올해 잇따라 터진 대형 이슈 여파로 대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회사채 발행시장을 바라만 봤던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회사채 발행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사실상 마무리된 가운데 10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일반 기업들이 공모로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총 24조2271억원으로 지난해 발행된 34조9840억원 대비 30.7% 급감했다. 올해 남은 2개월간 추가 발행이 이어진다고 해도 지난해 발행량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그룹별로도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3조5450억원의 공모채를 발행한 현대차그룹은 올해 발행량이 1조6600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53% 줄었고, 롯데그룹은 검찰 수사 여파에 하반기 자금조달에 거의 나서지 못하면서 발행량이 2조5700억원에서 1조2800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이밖에 LG그룹도 회사채 발행량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었고, 지난해 2조3600억원을 발행했던 GS그룹은 올해 조달 실적이 8400억원에 그치며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시중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자금 조달 여건이 개선됐다는 점을 감안할때 회사채 시장을 통한 대기업들의 자금조달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말해 기업들은 차입금을 확대하기 보다 보유자금으로 빚을 갚는 등 재무 관리에 더 집중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초우량 기업으로 통하는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올해 하반기까지 1조5000억원의 만기 도래 회사채를 자체 상환했고 KT GS칼텍스, SK종합화학 등도 보유 현금으로 만기 회사채를 갚았다.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도 그 이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며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차입구조를 장기화한 기업들의 차환 수요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또한 회사채로 조달한 자금의 용도도 대부분 만기가 도래한 기존 회사채를 갚은 차환용이 대부분이어서 실제 투자에 투입된 자금은 크지 않다.
올해 회사채 발행시장은 이미 문을 닫는 분위기다. 이달 들어 회사채 발행을 위해 증권사와 대표주간계약을 체결한 기업은 한국금융지주 정도만 눈에 띈다. 지난해 이맘때 CJ CGV, 한화테크윈, 아시아나항공 등 7~8곳이 대표주간계약을 체결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통상 대표주간계약은 회사채 발행 3주 전에 체결하는데 연말인 12월을 제외하면 사실상 마무리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전망은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방향성도 불투명해진 탓에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저성장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활력을 잃은 기업들의 신용도 하락 추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지난 2년 정도 신용등급 상승 기업보다 하락 기업이 훨씬 많은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내년에도 좋아보아진 않는다”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되고 산업 구조조정이 이어지면 경기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회사채 시장이 금리상승 기조에 힘입어 회복세를 나타낼 것 이라는 전망도 있다. 발행금리 상승으로 회사채에 매력을 느낀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수요가 공급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회사채 시장에서는 구조조정 이슈와 저금리 기조로 인해 투자 수요가 위축되면서 발행 시장도 함께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금리상승 기조를 고려하면 투자매력도 측면에서 투자수요가 회복되고, 이를 계기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올해보다 적극적
이어 김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경기회복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자금보다는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채 시장에 나설 것”이라며 “내년도 점진적인 금리상승이 전망되면 회사채 발행시기를 상반기로 앞당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전경운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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