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활동하며 여러 가지 사업의 이권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 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다. |
전경련 창구를 통한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지원에 이어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이 모금을 위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7대 대기업 총수와 독대했다는 정황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재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순실 스캔들에다 미국 대선 일정까지 맞물리며 기업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경영 시계 제로’ 상황에서 재계에선 검찰이 위치한 서초동 눈치만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업들이 검찰 수사 상황에만 매달리느라 올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은 물론 내년도 신규 사업과 투자 계획 등 경영 시간표가 줄줄히 뒤로 밀리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8일 “지금쯤이면 주요 그룹들이 연말 인사와 내년 투자 계획을 짜고 있어야 하는데 최순실 악재로 인해 손을 놓고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경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7개 그룹, 총수 검찰 조사 대비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정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7대 그룹 수장들이 지난해 박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는 상황이다. 검찰은 이와는 별도로 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53곳에 대해 전수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때문에 재계 초미의 관심사는 총수 소환 가능성이다.
10대 그룹 한 고위 임원은 “대통령과 독대가 이뤄진 기업들은 전부 검찰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법률 자문을 받는 등 내부 점검에 나선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대차와 SK그룹은 대관 라인을 중심으로 검찰 소환에 대비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총수 소환까지 가지 않도록 검찰에 사실 관계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신동빈 회장의 소환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른 총수들이 불려가면 신 회장도 소환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와 한진그룹은 일단 다른 기업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논란, 조양호 회장 평창동계올림픽 위원장 사퇴 외압설 등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던 만큼 대외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빠르면 다음주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양호 회장 일가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조사 결론을 내리고 검찰 고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겹악재를 맞은 한진이 철저히 내부 단속에 나섰다”고 말했다.
◆연말 인사·조직개편 얘기도 못꺼내
대기업 인사와 조직 개편도 발목이 잡혔다. 포스코는 당장 수뇌부 인사가 걱정이다.
연임을 노리고 있는 권오준 회장에게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49억원 출연은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권 회장은 아직 연임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사내 규정상 연말까지는 연임 의사를 밝혀야 한다. 포스코는 광고 계열사인 포레카 매각 과정에서 최씨 측근인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 칼끝이 권오준 회장을 겨냥할 거라는 소문이 돌아 포스코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KT 역시 미르·K재단에 18억원을 출연하며 삼성, SK 등 다른 대기업과 함께 검찰 타깃이 됐다. 황창규 회장은 제2 노동조합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 차은택씨 연관 회사에 광고를 몰아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황 회장 연임 여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그나마 포스코와 KT는 출연금에 대해 이사회 논의를 거치는 등 내부 절차를 지켰다. 이사회를 건네 뛴 다른 기업들은 배임여부도 걱정거리다.
◆면세점 등 대형 프로젝트 첩첩산중
최순실 게이트가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투자 계획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가뜩이나 불황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정치 불확실성이 기업 투자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
다음달 초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에 뛰어든 5개 그룹(SK·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HDC신라)이 대표적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며 불안감에 떨고 있다.
A그룹 관계자는 “국정이 사실상 중단됐고 경제 부총리까지 교체되는 마당에 면세점 입찰이 일정대로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이번에 연기되면 연내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면세점 입찰 5개 그룹 중 4곳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했다는 것도 불안 요소다. 이미 경쟁 업체 사이에선 상대편 회사가 최순실씨와 더 연관이 많다는 ‘네거티브 싸움’이 불거지는 등 불필요한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25일 신동빈 회장 검찰 수사가 끝난 후 5년간 40조원을 투자해 7만명을 고용하겠다는 ‘뉴롯데 혁신안’을 내놨지만 이를 구체화할 액션플랜을 짜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형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은 직후 재차 최순실 사태에 연루돼 고위 임원들이 검찰 조사를 받으며 고심이 깊어졌다. 롯데 관계자는 “언제, 어디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인력을 얼마나 더 충원해야 하는지 세부 계획 짜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CJ그룹은 1조 4000억원 규모 역점 사업인 K컬처밸리(경기 고양시 한류 테마파크)가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에 휩싸였다. K컬처밸리는 최순실씨 측근인 차은택씨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CJ 관계자는 “앞으로 정국 변화와 다른 대기업들 움직임을 지켜보며 인사, 조직 개편 시기를 조율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0대 그룹 한 고위 임원은
[정욱 기자 / 김정환 기자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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