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17일 밤, 잠실구장의 3루 더그아웃. 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넥센 선수들은 개인 짐을 쌌다. 웃음기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분했다. 프로의 세계에 승자와 패자는 가려지기 마련이며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승복했다. 그러나 분한 건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허탈감과 상실감, 아쉬움, 몇몇 선수는 벤치에 앉아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뛰고 싶어도 더 이상 뛸 수 없는 그라운드를. 올해는 더 이상 뛸 자격이 상실됐다.
넥센에게도 패착은 있다. 장기적인 포석으로 ‘호수’가 될 밴 헤켄의 2차전 등판은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다. 한 달 전부터 포스트시즌용 4번째 선발투수를 물색했지만, 이번에도 3선발 체제였다. 양훈, 강윤구 등 후보는 있었지만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4번째 선발투수가 없던 약점은 부메랑이 됐다.
↑ 17일 잠실구장을 떠난 넥센의 버스는 마산으로 향하지 않는다. 준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넥센은 끝까지 잘 싸웠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
그렇지만 비난 받을 자가 있을까. 모든 걸 다 쏟아냈다. 한 끗 차이였다.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넥센은 LG에 맞서 잘 싸웠다. 끝까지 팽팽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또한 물고 늘어졌다. LG의 완승 혹은 압승과는 거리가 있었다. LG는 준플레이오프 3,4차전에서 22개의 안타를 치고도 가시밭길과 빙판길을 번갈아 걸었다(잔루만 24개). 넥센은 끝까지 넥센다운 야구를 펼쳤다.
꼴찌 후보였다. 그러나 차, 포, 마, 상을 모두 떼고도 기막힌 반전을 이뤘다. 목표 승수를 넘어섰고 순위도 지난해보다 1계단이 더 올랐다. 다른 팀이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환경 아래 스스로 힘으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1년 전 강조했던 ‘원 팀’이다. 그리고 더 젊고 역동적인 넥센은 역시 넥센이었다. 더 이상 뛸 자격은 없어도 박수 받으며 떠날 자격은 있었다.
잠실구장을 떠나는 넥센 선수단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둘러싼 공기도 무거웠다. 또한 그들의 입조차 무거웠다. 작게나마 열린 입에서 새어나온 건 한숨과 탄식, 그리고 사과였다.
상기된 표정의 서건창은 헬멧을 쓰고 배트를 든 채로 인사를 했다. 팔꿈치 및 정강이 보호대도 풀지 않았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듯이. 최악의 생일선물을 받은 김하성은 도저히 입을 열기 어려웠다. 스스로에 대한 화도 컸을 터. ‘빨리 가자’라고 재촉하는 이는 없었다. 저마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끓어오른 감정도 가라앉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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