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제2차 대선후보 TV토론은 ‘성 추문’으로 얼룩졌다.
힐러리가 최근 언론을 통해 폭로된 트럼프의 11년전 여성비하·음담패설 녹음 파일을 무기로 토론 초반부터 트럼프를 몰아세우자 트럼프는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 추문으로 반격했다.
수천 만명의 미국 시청자들은 일요일 저녁 1시간30분동안의 TV토론에서 대선 후보 간 정책대결이 아닌 성 추문 공방을 지켜봐야 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날 TV토론을 ‘미국 대선 역사상 가장 추잡한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제기된 성 추문에 대해 낮은 자세로 사과하며 시작했다. 토론 두번째 질문으로 여성비하·음담패설 녹음 파일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그건 단순히 락커룸에서 떠든 농담이었다”면서 “어찌됐든 사과한다.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가족들에게 사과하며, 미국인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이어 “나는 누구보다도 여성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또 ‘동의없이 여성에게 키스하거나 몸을 더듬었다’는 녹음파일의 발언 내용에 대해 진위확인을 요청하자 “그런 일을 결코 한 적이 없다. 단지 말 뿐이었다”고 주장하고 “나는 안전한 미국, 강한 미국을 만들 것”이라며 화제를 바꾸려 시도했다.
트럼프는 당초 2차 TV토론을 힐러리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토론을 이틀 앞두고 2005년 트럼프가 유부녀를 유혹하려 한 경험담을 상스러운 표현을 동원해 이야기하는 녹음파일이 폭로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지난 7일 공개된 녹음파일에는 “결혼한 여자한테 XX하려고 접근을 시도했다가 아쉽게 실패했다” “어느 날 그녀를 보니까 커다란 가짜 가슴에 얼굴도 완전히 바뀌었더라” “혹시 키스하게 될 것에 대비해 사탕을 좀 먹어야 겠다. 나는 미인한테 자동으로 끌린다. 그냥 바로 키스를 하게 된다” 등의 발언이 담겨 있다.
공세 기회를 잡은 힐러리는 트럼프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힐러리는 “(녹음파일이 공개된 이후) 지난 48시간 동안 우리는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생각했다”면서 “트럼프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분명해졌다”고 강조했다. 또 “(녹음파일은)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트럼프가 선거기간 내내 여성들을 공격하고 모욕해 온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여성들의 얼굴을 거론하고 외모를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힐러리는 “여성비하와 녹음파일 뿐만이 아니다”면서 “트럼프는 이민자와 흑인, 히스패닉, 장애인, 전쟁포로, 무슬림도 비하하고 공격했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나는 공화당의 경선 주자들과 정치와 정책, 원칙에 있어 의견이 다르지만, 그들이 대통령직에 적합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며 “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성 추문을 둘러싼 공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힐러리의 공격이 계속되자 트럼프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과거 성 추문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트럼프는 “내가 한 것은 말 뿐이었지만 빌 클린턴이 한 것은 행동이었다. 훨씬 나쁜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빌 클린턴은 여성들을 학대했고 힐러리는 그 여성들을 악의적으로 공격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공격했다.
트럼프는 또 “한 여성은 12살 때 강간을 당했는데 힐러리가 가해자를 변호했고, 변호 대가로 8만5000달러를 받았다”고 몰아붙였다.
힐러리는 이에 대해 “대부분 거짓말”이라며 “미셸 오바마가 나에게 ‘트럼프가 저질스럽게 나오더라도 당신은 고급스럽게 대하세요’라고 조언을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맞섰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격한 공방을 예감한 듯 사회자의 소개로 토론장에 입장하면서 서로 악수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다만 두 후
힐러리와 트럼프의 성 추문 공방은 첼시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에릭 트럼프, 이방카 트럼프 등 두 후보의 자녀들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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