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사장단은 매주 수요일 아침 외부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다. 이 자리에 초청받는 연사들에게는 각 분야 최고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대우도 최고 수준이다. 차량 의전이 제공되고 시간당 최고 500만원에 달하는 강연료도 받는다. 올해만 해도 에너지, 자율주행차, 인구구조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교수들이 두루 초청됐다. 연사들의 강연 내용과 저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 연사’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삼성그룹이 연사료를 아끼게 될 판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는 물론, 국공립·사립대 교수의 외부강연에 대한 시간당 강연료를 법으로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들의 강연이 콘텐츠의 ‘시장가치’가 아니라 ‘소속기관’과 ‘직급’에 따라 값어치를 평가받게 되는 셈이다. 지식 산업에 대한 강력한 ‘가격 통제’이자 교수들의 강연료를 일괄 규제하는 세계 최초의 입법 사례다.
◆공무원식 분류기준따라 강연료 ‘차별’
공무원이 아닌 학계까지 김영란법 규제대상이 되면서 코메디같은 상황도 발생하게 될 전망이다.
김영란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립대 교수는 시간당 40만원(총장은 50만원), 일반 사립대 교수는 직급에 상관없이 최고 100만원의 강연료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법인으로 전환된 서울대 교수는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으로 분류돼 최저 수준인 30만원(총장은 40만원)이 ‘상한선’이 됐다.
이에 따라 법인화된 서울대나 카이스트 소속의 유명 연사들도 예외없이 시간당 40만원 이하의 강연료에 만족해야 할 처지가 됐다. 만약 같은 분야의 교수들이 한 세미나나 강연회에 참여하더라도 소속 학교에 따라 강연료가 달라지는 촌극도 예상된다.
학계는 반발하고 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화예술인이나 유명 방송PD 등 스타급 인사, 의학 등 전문분야 종사자들은 시간당 100만원이 넘는 강연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세분화된 규정없이 직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강연과 학문 발달 자체를 저해하는 규제”라고 말했다.
또 강연료에는 자료수집 등 강연 준비과정에 대한 비용이 포함되는데, 단순히 시간당 금액만 보고 고액 강연이라고 비난해선 안된다는 의견이다.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수의 직무에 포함되는 강연에 대한 사례금을 변형된 ‘뇌물’로 보고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교수의 외부강연이 규제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부터 근본적인 논의가 다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의 한 교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정에 연루되지 않는 한 개인은 자신의 상품가치에 따라 시장에서 평가될 권리가 있다”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가치를 인정받아 1000만원을 받았다고 형사처벌된다면 이게 상식적인가”라고 반문했다.
강연료 관련 규정이 ‘속인주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역차별을 자초하는 측면도 있다. 한국인 교수는 외국 세미나에 초청돼 강연해도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 반면 외국인 교수는 한국에 와서 강연할 때 금액 제한없이 강연료를 받을 수 있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 분야 최고 전문가가 글로벌 기업 초청으로 해외에서 강연하는 것과 부정청탁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외국 석학은 국내에서 고액 강연을 하는 것은 허용하면서, 향후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더라도 최고 100만원만 받으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 공무원 강연료 상한은 되레 올라
사실 강연료가 김영란법의 규제 대상이 된 것은 공무원들이 기업체나 유관기관에서 고액 강연료를 받으며 구설수에 오른 것이 출발점이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들이 산하기관 강연 등을 통해 사실상 ‘떡값’을 챙기는 사례가 꽤 많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취임 전 2시간 강연에 500만원이 넘는 강연료를 받아 인사청문회에서 질타를 받기도 했고, 한해 61차례 외부강연으로 1900만원을 받은 일선 공무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권익위는 2012년과 지난해 두 차례 외부강연 규정을 개정해 공무원의 최고 강연료를 시간당 40만원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정작 김영란법 시행령에선 장관급 50만원, 차관급 40만원 등으로 금액 기준을 오히려 완화했다.
대학 교수 등 민간영역의 외부강연도 불법적인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실제로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제약업체로부터 강연료 명목으로 3000만원이 넘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대 교수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개별법이 아닌 김영란법으로 규율하는게 옳은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며 “의사는 의료법, 언론인은 언론 관계법, 사립학교 교수는 사립학교법으로 규제하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대 교수들의 리베이트 문제가 불거지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공정경쟁규약 개정에 나섰다. 국제학술대회 등 글로벌 스탠더드를 감안해 합리적인 강연료나 자문료를 조정해 올 상반기 중 공정거래위원회에 규약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며 논의는 ‘올스톱’ 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련 법규정이 있는 상황에서 규약 개정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학술 행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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