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당해 업무가 마비된 계열사들이 그룹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다. 검찰의 전방위적 압박에 사실상 그룹 전체가 완전히 뇌사상태에 빠졌다.”(롯데 고위관계자)
검찰이 롯데그룹 정책본부 압수수색 나흘 만인 14일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등에 대해 2차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롯데그룹이 사실상 ‘경영마비’ 상태에 빠졌다. 해외 인수합병(M&A) 작업이 사실상 모두 중단된 것은 물론 일상적인 업무마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롯데그룹이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로 1937년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으며 휘청이고 있는 것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정조준하고 이례적인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있는 만큼 올 하반기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비밀리에 추진했던 미국과 프랑스 지역의 호텔 인수작업이 중단됐다. 관련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출국금지 조치 되면서 최종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데다 대규모 투자를 위한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 면세점 인수 작업도 전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면세점을 2020년까지 세계 1위 면세점 업체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이후 롯데면세점은 호주 면세점 인수를 추진해왔다. 이에 앞서 롯데그룹은 미국 액시올사 인수작업도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규모 인수합병 작업이 모두 중단되면서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신규 사업 뿐 아니라 주요한 현안들도 삐걱거리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숙원사입인 롯데월드타워 건설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초 롯데그룹은 올해 12월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하고 롯데그룹 제2의 도약을 선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롯데월드타워의 총책임자인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구속된데다 그룹 전체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동력을 상실한 모습이다.
올해 연말 쯤 특허 재승인이 기정사실화됐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지난해 특허를 상실한 월드타워점은 부활을 노렸지만 검찰 수사라는 더 큰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월드타워점의 연 매출은 6000억 원 규모로 롯데면세점의 핵심 사업장 중 하나다.
유통 계열사들의 신규 점포 개설 작업도 사실상 모두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신규 점포 개설을 위해서는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데 검찰 수사로 대부분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신규 출점을 잠정 보류한 상태”라고 말했다.
롯데가 투자하는 지방자치단체 대형 사업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부산에서는 롯데월드와 롯데쇼핑이 각각 19.5%와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동부산관광단지 테마파크 사업은 최근 10여년 만에 겨우 본궤도에 올랐으나 이번 검찰 조사로 중단 위기에 처했다.
롯데쇼핑이 추진하고 있는 경남 김해관광유통단지 사업과 안면도 국제관광지 개발 등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충남은 호텔롯데가 부여와 제주 리조트를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배임 등 비리가 있었는 지 검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천에서는 롯데가 투자하는 송도국제도시 롯데몰과 남동구 인천터미널 부지 복합 시설 개발 사업에 파편이 튈 가능성이 있다. 울산시가 서부권 개발 핵심 시설로 주목하고 있는 KTX 울산역 복합환승센터도 롯데쇼핑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올 연말 착공할 계획이지만 예정대로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이런 굵직한 사업 중단도 문제지만 더 큰 위기는 내부에서 포착된다. 그룹의 심장인 정책본부 이인원 부회장을 비롯해, 운영실 황각규사장, 커뮤니케이션실 소진세사장이 출국금지됐고, 이일민 비서실장과 이봉철 지원실장이 소환되는등 정책본부 7실중 절반이상이 검찰조사에 직접 연루된 상황이다. 이때문에 정책본부 직원들은 중요 서류는 물론 휴대폰까지 빼앗기면서 컨트롤타워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더욱이 신동빈 회장은 당장 귀국하지 않고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을 위해 미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계획이다. 최고경영자의 부재 상황이 길어지면서 그룹 내부에서는 우왕좌와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특히 계열사 CEO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노병용 사장이 구속되면서 위기상황에서 계열사들의 일사분란한 움직임도 찾아보기 힘든 형국이다.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인 유통업의 경우 소비자와 접점에 있는 만큼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지만 이번 사태로 롯데 이미지에 큰 흠집이 난 것도 롯데로서는 부담스러
직원들의 사기저하도 심각한 문제다. 롯데그룹의 한 직원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 이후 1년간 계속되는 악재에 다들 지쳐가고 있다”며 “그룹 전체를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하는 전례없는 상황을 보면 이러다 회사 망하는거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서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