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표절일까, 아니면 우연한 아이디어의 일치일까.
‘8마디 이상 유사하면 표절’이라는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있는 가요계와 달리 이 같은 규정이 없는 드라마의 경우 아무리 이야기와 설정이 비슷하다 할지라도 무조건 표절로 몰아붙이기에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표절논란은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정작 이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상대적으로 표절논란에 대해 이렇다 할 규제가 없는 드라마 시장에서 공모전에 제출된 작품에 대한 보호 또한 미비하다. ‘너를 기억해’와 ‘피리부는 사나이’가 연달아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이 같은 공모전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다.
과거 드라마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했다는 한 참가자는 “예전에 드라마 공모전에 작품을 냈다가, 우연히 어떤 드라마를 봤는데 등장인물 이름과 내용이 엇비슷하게 나오더라. 사실 차별성을 두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라든지 설정을 상당히 특이하게 했는데 드라마 속에 그대로 나오더라.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슷했다”며 “정말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더라. (공모전을 응시했던) 방송사가 보기 싫어서 TV 채널에서 지워버렸다. 나름 제 인생이 묻은 소재들이라 빼앗기면 인생을 빼앗기는 거와 다를 바 없다보니 너무나 허탈했고, 이대로 공모전에 계속 응시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고 하소연 했다.
또 다른 참가자 역시 “어느 날 우연히 TV를 봤는데, 제가 공모전에 제출했던 아이디어가 드라마와 교묘하게 섞여있더라. 완벽하게 같지 않아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것 같아 속상했다”며 비슷한 사례를 토로했다.
모든 ‘표절’은 옳지 못하나, 그 중에서도 공모전 표절 논란은 다시 한 번 제고해 볼 필요가 있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벌어짐에도 드라마 극본 공모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 발굴의 가장 대표적인 통로이자,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스타작가를 배출시키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실제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희경 작가, ‘내 딸 서영이’의 소현경 작가 등 많은 이들이 각 방송사의 드라마 극본 공모전을 통해 입봉하면서 유수의 대표작들을 탄생시켜왔다. 이른바 인재 발굴의 산실인 드라마 공모전이지만, 만일 이를 보호하는 장치가 없다면 더 이상 이와 같은 순기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피리 부는 사나이’의 표절 논란이 대중의 지탄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 참가자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는다는 것 자체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류용재 작가가 고동동 작가가 공모전에 제출했다는 ‘피리부는 남자’를 표절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시킬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표절 시비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려우나, 도의적인 부분에서 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특히 이번 사례는 13년 전 발생했던 KBS2 드라마 ‘여름향기’의 표절논란과 그 모양세가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 공모전에 제출한 한 작가의 시나리오를 도용했다는 의심을 받았던 ‘여름향기’의 경우 1년 간 법정분쟁을 벌이다가 “한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본 이후 표절사건을 급하게 봉합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저작권 등록을 하면 일이 해결되지 않느냐고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저작권 등록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장치일 뿐, 결국 법정 분쟁에 가면 승소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만큼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한 공모전 참가자는 “김수현 작가처럼 최고의 로펌을 고용할 재력이 없는 이상, 저작권 등록은 무용지물”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표절 방지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작권을 침해 여부를 밝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만큼,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표절에 민감한 만큼 대부분 방송사의 드라마 극본 공모전들은, 공모전이 끝난 이후 탈락된 대부분의 작품의 기획안들을 폐기처분하며 이와 같은 논란을 방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처리할 근거가 약하기 때문에 이는 최소한의 보장에 불과하며, 많은 이들이 “공모전 시행시 참여하는 작품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에는 창작자의 양심에 맡기는 해결책에 기댈 수밖에 없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