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간 정치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드 문제가 자칫 ‘발화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해 “대한민국은 사드가 배치되면 군사적으로 유용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배치)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이어 “철저히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 관점에서 보고 있고, 한미 양측의 공동실무단이 구성돼 배치 지역과 시기·비용 등을 공동 검토하고 있다”며 “그 결과가 양국 정부에 보고·승인되면 그에 따라 조치된다”고 설명했다. 사드 배치 가능성을 한번 더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다만 같은 날 현지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사드 배치를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일단 ‘숨고르기’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 쑨젠궈(孫建國) 부참모장은 5일 아시아안보회의 주제 연설을 통해 “사드 배치는 지역의 안정을 잠식할 것”이라며 “미국이 사드 시스템을 한국에 배치하려는 것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어 “사드의 한반도 전개는 그들이 필요한 방어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필요 이상의 조치”라고 한·미 양국을 압박했다. 쑨 부참모장은 전날 한민구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반대 입장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거들고 나섰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러시아 국방차관은 이날 “한국과 미국간 미사일 방어협력이 전략적인 안정을 파괴해선 안된다”며 “미사일 방어 전략과 공격 전략은 구별돼야 한다”고 사실상 사드 배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한·미 양국은 한반도 배치를 연내 확정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가고 있는 분위기다. 주변 강대국의 반대 기류를 의식해 사드 문제를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루고는 있지만 사드가 ‘방어용 무기체계’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발언의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한민구 장관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중국이 사드를 너무 과대 평가해서 본다.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떻게 미사일을 방어할 것이냐가 본질”이라며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보유한 미사일 요격 능력은 종말 단계의 하층에 불과하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지역을 방어할 수 있는 사드가 배치되면 군사적으로 유용하다는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는 샹그릴라대화에 앞서 한·미간 협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도 중·러를 의식하는 해명성 발언을 내놨다.
마크 토너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지난 3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계속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사드 한반도 배치 필요성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공식 협의가 시작됐다”며 “협의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드는 중거리와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려는 목적에 국한돼 있다”며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략 억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특히 사드 한반도 배치 가능성에 반발하고 있는 중국에 사드 배치의 목적과 용도에 대해 직접 설명할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사드 문제가 다시 이슈화되면서 국내 정치권도 찬·반 양쪽으로 나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내에는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지만 야권은 정반대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외교가 중요하고 도랑에 든 소”라며 “미국 풀도 먹어야 하고 중국 풀도 먹어야 한다”고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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