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출신’인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내년 대선 출마를 시사하고 대구·경북(TK)에서 바람몰이에 나서면서 그동안 한국 정치를 좌우했던 지역구도도 격변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30일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의 방한으로 ‘충청+TK 연대’ 집권 시나리오가 더욱 설득력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권 재창출이 지상과제인 친박(친박근혜)계가 마땅한 대선 주자를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이 현실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TK 지역민심도 반 총장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중앙일보가 지난 27일부터 이틀 간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반 총장의 TK 지지율은 45.1%로 오히려 자신의 고향인 충청(30.6%)보다 무려 14.5%포인트 높았다. 심지어 여권의 대선 주자를 묻는 질문에서도 TK 응답자들은 지역 대표 정치인인 유승민 의원(13.5%)보다 반 총장(52.6%)에게 더욱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오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가상 3자 대결을 벌이면 지지율은 61.3%로 급상승했다.
실제 지난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확고한 텃밭인 TK를 기반으로 충북, 강원에서 압도적인 표차를 기록하고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가 지역맹주로서 각각 PK, 호남, 충남의 표를 분산시켜 당선될 수 있었다.
반 총장이 충청과 TK를 기반으로 중원을 장악하고 수도권에서 선전하면 부산·경남(PK)에서는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가, 호남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 등 야권의 표가 갈려 해볼만하다는 계산도 나온다.
한때 반 총장 측에서는 1997년 ‘김대중(DJ)-김종필(JP) 연합’에 이어 제2의 ‘충청-호남’ 연대론도 선택지 안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나와 “제가 1년 반 전에 반 총장의 이야기를 맨 먼저 방송에 나가서 했다”면서 “그 때만 하더라도 대선 출마와 소속 정당에 대한 가능성이 반반 이었고 저에게도 많은 접촉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반 총창 측근들이 제안한 대선전략은 충청과 호남이 연대해 옛 DJP연합을 계승한 ‘뉴 DJP연합’을 하자는 것이다. 반 총장이 햇볕정책 지지자인데다가 대북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만큼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처럼 반기문-김정은 회담이라는 대형 사건을 통해 반기문 대망론을 굳혀갈 수 있다는 구체적인 전략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는 “그때 아직 2년 7개월이 남았는데 반 총장이 대선에 안나오거나 새누리당으로 가버리면 민주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 될까봐 조금 기다려보자고 했는데 여권이 무너져버리니까 결국 그 쪽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서는 반 총장이 여권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자 ‘호남-PK’ 등 기존 지역구도와는 완전히 새로운 카드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문 전 대표와 안 상임공동대표가 모두 부산 출신인 점과 최근 들어 PK가 여권에 회의적인 덕분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 더민주는 부산에서만 5석을 획득하며 야풍(野風)의 위력을 떨친데다가 오는 6월말 입지 선정 발표를 앞두고 있는 영남권 신공항이 TK와 PK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약 전통적으로 영남이라는 지역구도로 묶였던 PK민심이 ‘충청+TK 연대’에 등을 돌리
야권 일부에서는 반 총장의 대항마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대망론’도 흘러나온다. 충남 논산 출신인 안 도지사가 ‘세대 교체론’을 내세워 반 총장에 맞설 경우 판을 뒤엎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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