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의 절대 수치만 볼 게 아니라 지난 30년간 일본의 교역구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일본은 수출 총액의 3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2011년에는 대미 교역 규모가 16%까지 떨어졌고 오늘날은 18% 정도에 머물고 있다.
즉 단일 국가에 대한 엔화 환율의 직접적 영향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엔·달러 환율이 주로 회계상 통화에 국한되기 때문에 엔화가 약세를 보이더라도 일본의 다른 교역(총수출의 82%)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일본 수출이 가격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가정도 틀렸다. '메이드 인 재팬' 표시는 높은 품질과 뛰어난 디자인으로 대변된다. 일본 제조업을 뜻하는 '모노즈구리'는 끊임없는 디자인 개선과 생산 과정 최적화에 대한 집념으로 번역될 정도다. 단기간에 일본의 주 교역국으로 성장한 중국조차 자국 소비자들이 빠르게 세련돼졌다고 평가한다. 일본 제품의 높은 품질·디자인·기업 이미지는 이미 싼 가격을 넘어서는 가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올 들어 일본 기업의 이윤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엔화 강세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일본 기업의 실적 개선 원인을 두고 엔 약세를 지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엔화 반등이 일본 기업의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 일본 기업의 수익은 통화에 민감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엔화값이 1% 강세를 보이면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이 0.4%씩 떨어진다.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지난해 12월 이후 최근까지 엔화값이 약 11% 올랐으니 기업 수익성도 4.5% 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일본 기업의 이윤이 이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늘날의 일본 기업의 이윤은 엔화의 움직임에 덜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은 가격 외 요인에 의해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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