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오늘裏面'은 이러한 궁금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뉴스와 사건들 속에서 울고 웃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오늘이면은 과거의 오늘이 가진 다른 의미를 추적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소외당하고 잊혀질 뻔한 사실들을 적습니다.
오늘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이면] 제3당 자민련 탄생, 총선 D-14 '국민의당' 은 어디로...
21년 전 오늘, 3월 30일은 김종필 전 총리가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을 창당했던 날입니다.
1995년, '자민련'의 탄생은 한국 정당사에 한 획을 남겼습니다. 당시 여당인 김영삼 총재의 '신한국당'과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 틈에서 교섭단체를 꾸려냈고, 이후 10여년을 이어오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흡수되기 전까지 '제3당'의 대명사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자민련의 탄생은 1988년 '3당 합당'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13대 총선에서 김영삼은 자신의 통일민주당이 3당으로 밀려나자 여당인 민주자유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을 단행했습니다. 김영삼은 이를 배경으로 민자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1992년 대권을 손에 쥐었습니다.
김영삼의 집권에 기여한 김종필은 이후 민자당 대표가 됐지만 정치 인생이 판이했던 두 사람은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삼은 ‘세계화’ ‘혁신’ 노선을 걸으며 그를 멀리했고, 이에 김종필은 15대 총선을 1년 앞두고 충청권을 기반으로 독자 정당 자민련을 창당하며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 사진=연합뉴스 |
창당 후 자민련은 그해 6월 충남북·강원도지사와 대전시장 선거에 승리한 데 이어, 15대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김대중과 연합해 DJ정부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합니다. 이후 자민련은 공동여당으로서 김종필, 박태준 국무총리를 배출했고 소속 의원들이 내각에 진출하며 국정의 한 축을 맡았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김 전 총리가 양당구조에 도전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라며 “박정희 대통령과 어려운 시기 나라를 이끌었고 김대중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당사에 민주적이고 수평적 정권교체에 기여했다”고 평했습니다.
↑ 사진=연합뉴스 |
이같이 안 대표는 제3당 체제 정립을 기치로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는 2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하는데 힘을 다할 것” 이라며, “총선 목표인 40석을 달성하지 못하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책임을 지겠다”고 배수진을 친 상황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창당 당시만 해도 양당 구조를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인지 주목을 받았지만 ‘호남의 자민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총선에서 호남을 제외한 곳에서 당선자를 거의 내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인 분석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당 호남 지지율은 42.1%(더민주 27.8%)를 기록했고, 전국 지지율은 14.0%(더민주 25.7%)에 그쳤습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서울의 경우, 정의당보다도 낮은 지지율(정의당 17.6%, 국민의당 13.0%)을 보였습니다.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 대상,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전화조사원 인터뷰,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응답률 18%).
↑ 사진=연합뉴스 |
충청권을 기반으로 삼았던 자민련은 창당이후 첫 선거에서 제3정당으로 첫 단추를 끼우는
한국 정치사에서 제3정당을 추진한 세력이 단독으로 집권하거나, 집권을 주도한 경우는 아직 없었습니다. 국민의당이 과거의 전례를 반복할 것인지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선례를 남길 것 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MBN 뉴스센터 한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