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카(자율주행자동차) 개발 열기가 글로벌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에서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를 맺었다. 두 회사는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로 불리는 ‘라이더(Lider)’ 제조업체인 미국 벤처기업 쿼너지(QUANERGY)와 투자·협력관계를 맺으며 미래 핵심 기술 확보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자동차부품산업으로, 현대차는 IT산업으로 각각각 사업영역으로 확대하는 보폭을 넓히고 있어 두 회사가 마주치는 사례는 더 빈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3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 계열사인 삼성벤처투자는 워덴클리프 파트너스(Wardenclyffe Partners) 등과 공동으로 2014년 5월 쿼너지에 450만 달러(약 54억원)를 투자했다. 투자금액은 크지 않지만 설립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높이 보고 초기에 베팅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워덴클리프 파트너스는 미국서 고성능 전기차로 유명한 테슬라의 창업자들이 만든 벤처캐피탈이다.
삼성이 쿼너지에 자금을 댔다면 현대차는 기술협력을 하고 있다. 초기 설립 단계에서부터 현대차는 같은 완성차 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 르노-닛산 그룹 등과 함께 라이더 기술을 공동 개발중이다.
최근 현대차가 출시한 제네시스 프리미엄 브랜드의 첫 차인 EQ900에 탑재된 라이다도 쿼너지가 개발한 부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EQ900은 이런 라이다 기술 덕분에 고속도로에서 손과 발을 떼고도 20초 정도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할 수 있게 됐다.
레이저 레이더(Laser Radar)라고도 불리는 라이다는 전파에 가까운 성질을 가진 레이저광선을 사용해 외부환경을 3차원으로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자율주행을 하려면 차 주변 수백미터 반경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는 자율주행의 핵심기술로 꼽힌다.
라이다는 사람으로 치면 눈의 역할을 한다. 자동차에 많이 달면 달수록 주변을 제대로 파악해 정확한 정보를 차에 전달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값비싼 가격이다. 고급 제품의 경우 개당 가격이 1만 달러를 넘어서고, 싼 제품을 골라도 최소 3000달러는 줘야 한다. 몇 개만 달아도 차 값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 현실이다.
쿼너지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6’에서 라이다를 대당 1000달러(약 120만원)에 양산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라이다 가격이 대폭 낮아질 경우 보다 저렴한 가격의 스마트카가 속속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 시장에서 삼성과 현대차가 마주치게 되는 일은 앞으로도 빈번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카의 등장과 함께 가전업계와 자동차업계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지는 분위기다.
IT업계 거두인 구글과 애플이 스마트카 개발에 나선 것이나, 독일 자동차업계가 IVI(인 비히클 인포테인먼트)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영역 파괴의 사례다. 심지어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최근 3~4년간 스마트카 신차 공개를 디트로이트모터쇼가 아닌 가전쇼인 CES에서 하고 있다.
이미 삼성은 삼성벤처투자를 앞세워 스마트카 관련 기업에 폭넓은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콕스오토모티브, 콘티넨탈 등과 함께 미국 벤처기업 빈리에 650만 달러(약 78억원)를 투자했다. 빈리는 무선통신 기능이 없는 구형 자동차에도 자체 개발한 장치를 붙이면 스마트카로 변신하게 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다.
또 삼성벤처투자는 2014년 말에는 스마트카의 핵심인 배터리 관련 신기술을 가진 미국 벤처기업 시오(Seeo)에도 코슬라벤처스, GSR벤처스 등과 함께 1700만 달러(약 200억원)의 투자를 집행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회사인 독일의 보쉬에 인수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며 차량사업 확대에 나선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삼성은 전자 계열사들과 삼성경제연구소 등까지 동원해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 찾기에 혈안이 돼있다. 뒤늦게 뛰어든 첨단 전장시장에서 모든 걸 자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가전 업체와 완성차 업체가 과거에는 협력했다면 최근에는 경쟁구도로 흘러가고 있다”며 “서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앞으로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훈 기자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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