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쪽방촌’에는 모든 쪽방촌이 그렇듯 이곳에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사업부도나 가출 등 사연으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노환으로 죽어 나가거나 간혹 성공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영등포역파출소에 따르면 이 곳에는 노숙인과 고령자, 장애인, 일용직 근로자 등 541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60~70%가 기초수급대상자로 대부분 월세 25만원에 두 평 남짓한 쪽방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 지역 가구들도 기름보일러를 설치해 ‘연탄 보일러’로 인한 질식 사고는 옛날 얘기라고 한다.
거주 환경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겨울이 되면 종교계와 여러 사회복지단체가 이곳을 찾아 펼치는 다양한 봉사활동이 고마울 수 밖에 없다. 특히 ‘요셉의원’의 이문주 원장과 ‘토마스의 집’ 김종국 신부, ‘홈리스복지센터’를 운영하는 임명희 광야교회 담임목사는 1년 365일을 쪽방촌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주민들에게 희망과 빛을 주는 ‘숨은 천사들’이다.
이들 3명의 천사는 취재진에게 “요즘 세상이 어렵다고 하지만 아직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선행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 같다”고 입을 모았다.
87년 요셉의원을 개원한 이문주 원장은 29년째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원장은 전·현직 의사와 약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 봉사자 90여명과 함께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쪽방촌 어르신들의 건강을 지키고 재활을 돕고 있다. 의료 봉사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의 재능기부로 음악교실, 영화포럼, 인문학 강의 등도 이뤄진다. 이 원장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는 치료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재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임명희 광야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88년 4월부터 무려 28년째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임 목사는 87년 신학대생 시절 청량리에서 노숙인과의 만남을 인연으로 영등포 쪽방촌 사정을 접했다고 한다. 홈리스복지센터는 주민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500여 세대를 돌보는 ‘쪽방 상담소’와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노숙인 쉼터’를 가동 중이다. 그는 “도움을 받은 이들이 나중에 ‘주는 사람’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복지가 진정한 복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쪽방촌 출신들이 다시 쪽방촌에 나눔을 환원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홈리스복지센터는 또 단순히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검정고시 학원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임 목사는 “쪽방촌에는 가난 때문에 공부를 중단하게 된 학생들이 많은데 의외로 학업에 대한 열정이 많다”며 “몇 년째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서울대 학생들과 함께 검정고시 학원을 운영해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영등포 쪽방촌에는 20여명의 청년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대부분은 부모와 함께 가난하게 살거나 일부는 홀어머니(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나 고아도 있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이들이 많아 그동안 그동안 검정고시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했지만 내년에는 검정고시학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영등포역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토마스의 집’은 93년 설립돼 올해 23년째를 맞았다. 그동안 건물주에게 쫓겨나는 등 세 차례 이사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매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식사를 기다리는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로 긴 줄이 형성된다. 이곳 김종국 신부와 봉사자들은 밀려오는 잠을 물리치고 새벽부터 장을 봐 하루 400~500명에게 점심을 대접한다. 이어 쉴틈도 없이 오후 4시까지 설거지를 마치고 쪽방촌 가정을 직접 돌아다니며 과자와 과일을 제공한다.
매 시간이 고된 희생과 헌신의 연속이지만 김 신부는 되레 일부 주민들에게 멱살을 잡힐 때가 있다. “당신 때문에 동네가 지저분해졌다”는 지역민과 상인들의 항의가 바로 그 것. 이럴 때면 김 신부는 “제 멱살을 잡아서 분이 풀리거나 마음이 편해지는 거면 계속 잡고 계시라”고 말한다. 그는 취재진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한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2016년 새해, 이곳 주민과 노숙인들이 한 명이라도 더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천사 3인방이 당부하는 ‘사랑’의 값은 작아서 더 절실해보였다.
[서태욱 기자 / 박윤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