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대호와 천만덕의 우정 영화
140억 CG 나쁘지 않네, 무거운 소재가 관객 호응 이끌까?
지리산에 사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와 이 짐승을 쫓는 일본군, 그리고 대호를 지켜주고 싶은 천만덕(최민식).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의 주인공들은 항일(抗日)을 이야기 한다.
1925년 일제 강점기, 호랑이를 해로운 짐승으로 간주(해수구제)하고 말살하려 한 일본은 마지막 호랑이 대호의 가죽까지 벗겨 장식품으로 쓰려고 한다.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의 명령을 받은 조선의 포수 집단과 일본 군대는 지리산 산군(산의 임금님) 대호를 압박한다. 그 대척점에는 이 거대한 군대와 맞서는 대호가 있다. 고군분투, 죽은 새끼들을 보듬는다.
그 가운데 더는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 명포수 천만덕이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먹을 만큼 산나물을 캐며 아들(성유빈)과 함께 근근이 살아가는 남자다.
이 세 부류는 '대호'를 통해 과거 조선인의 삶을 은유한다. 과거 핍박받은 조선인의 삶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왜 자신이 해수가 됐는지 알지도 못한 채 죽어 나가는 호랑이들은 조선인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일본군에 대항하며 무섭게 달려드는 대호. 나라를 잃고 괴롭힘을 당한 우리가 무기 없이 맞서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사냥할 수밖에 없는 삶"이라며 일본군에 붙은 포수들, 조선인이지만 일본군 장교가 된 이(정석원)도 그 시대의 절반을 차지했을 게 틀림없다. 영화 '암살'에서 변절한 염석진(이정재)이 "내 이런 시대가 올 줄 알았나?"라고 한 것처럼 이들도 항변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들 역시, 우리 마음으로는 쉽게 용서할 순 없다. 물론 동생을 잃은 구경(정만식)처럼 복수심에 사로잡힌 포수도 있다.
주연배우들과 감독은 단순한 항일영화가 아니라고 했는데, 일차적 해석은 항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항일 이야기지만 항일로만 안 보이도록, 영리한 연출을 선택했다.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덕은 일제의 압박에도 묵묵히 중심을 지킨다. 하지만 그는 나름의 비밀이 있고, 만덕이 다시 총을 잡아야 할 때도 그 명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말고 교감하며 살자는 의미도 있다. 다만 호랑이와 교감하는 만덕이 이해되지 않는 이도 있을 것 같긴 하다. 관객이 이 부분을 공감하느냐가 '대호'의 성공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대호는 최민식이기도 하고, 조선이기도 하다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과거 많은 이들이 죽음을 불사했지 굴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현재의 우리가 있다. "산군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다"라는 만덕의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대호'는 통쾌한 한방은 없다. 감동적이지도 않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재부터 무겁고 묵직한 메시지가 관객의 호감을 불러올 수 없을 수도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루함도 이어진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감동적이진 않지만 생각할수록 먹먹한 울림의 강도가 세다.
전체 컴퓨터그래픽(CG) 처리해야 했던 호랑이도 몰입도를 방해하
CG 호랑이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최민식 보러 왔다가 호랑이의 연기와 만덕 아들 역의 성유빈, 카리스마 넘치는 정만식이 스크린을 압도하는 느낌을 받는다. 139분. 12세 이상 관람가. 16일 개봉 예정.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