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를 끌어들여 코스닥 상장회사를 인수합병(M&A)한 뒤 주가조작을 벌여 개인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일당들이 무더기로 사법 처리됐다. 일반적인 주가조작 패턴에서 벗어나 이른바 ‘워런트(신주인수권) 풀기’ 등 신종 수법으로 감독당국 감시망을 피해갔다. 이렇게 고도로 지능화된 주가조작 작전을 설계한 배후에는 유력 회계법인 회계사도 포함돼 있었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김형준 부장검사)은 코스닥상장회사인 파캔오피씨(OPC)와 위지트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취한 전직 사주와 경영진, 시세조종 전문가 등 16명을 적발해 7명을 구속 기소하고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무자본 M&A 전문가 김모(45)씨는 사채업자 자금을 끌어들여 파캔오피씨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주가조작을 벌였다. 2014년 5월 파캔오피씨의 기존 경영진으로부터 50억원에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금 5억원을 지급한 뒤, 앞으로 인수할 파캔오피씨 주식을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맡기는 방식으로 45억원을 조달받아 M&A를 성사시켰다.
파캔오피씨 경영권을 인수한 뒤 회사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김씨는 기존 경영진이 보유하고 있던 워런트를 사채업자들에게 넘기도록 유도했다. 사채업자들이 보유한 워런트 행사가격은 2391원이었다. 워런트란 특정한 가격(행사가)에 회사로부터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권리(옵션)다.
김씨 등은 시세조종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사채업자들이 워런트를 행사해 차익을 실현하는 이른바 ‘워런트 풀기’라는 신종 수법을 썼다.
일반적인 주가조작은 시세조종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뒤 보유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형태다. 워런트 풀기 수법은 일반적인 형태와는 달리, 불법 이득을 노리는 주가조작 사범이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워런트를 행사해 차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불법 세력들은 이같은 워런트 풀기를 이용하면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차익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노렸다.
지난 2011년 12월 무자본 M&A로 위지트를 인수한 정모(44)씨와 이모(41)씨 역시 인수 자금을 사채업자로부터 조달한 뒤 주가조작을 벌였다. 사채업자와 공모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1만8000차례 시세조종 주문을 내 주가를 3100원에서 3470원까지 1차로 끌어올렸다. 이후 주가가 다시 하락하자 2012년 5월부터 6월까지 2차 시세조종을 통해 963원이었던 주식을 1770원까지 끌어올려 85억원 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불법 세력이 차익을 취하고 빠져나간 뒤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결국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봤다. 파캔오피씨 주가는 시세조종 이후 급락해 2013년 12월 800원까지 폭락했다. 주가가 하락하자 사채업자들이 담보로 잡은 주식을 처분(반대매매)하면서 주가가 추가로 폭락했고, M&A 이후 경영 정상화를 기대하고 회사 주식에 투자햇던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파캔오피씨 주가조작 사건에는 유력 회계법인 회계사도 관여된 것으로 밝혀졌다. S회계법인 상무인 박모(41)는 김씨가 계획하는 무자본 M&A에 대한 전반적인 자문 역할을 담당했고, 김씨와 함께 시세조종에 필요한 자금 3억원을 조달하는 등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
검찰 관계자는 “자본시장에서 상장회사들의 부정행위를 감시해야 할 회계사 등 전문가가 오히려 주가조작 세력과 범행을 주도해 부정한 이익을 손에 쥐는 사이 다수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봤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주가조작 비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수사해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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