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2년 4월. 정상회담차 캐나다 오타와를 찾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넉 달 갓난 아이와 의미있는 만남을 갖는다.
닉슨 대통령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이 아이 앞에서 앞으로 (양국의) 모든 격식은 파괴될 것입니다. 캐나다의 미래 총리를 위해 건배합시다.”
‘미래 총리’ 갓난 아이는 당시 정상회담 상대인 캐나다 피에르 트뤼도 총리의 장남, 저스틴 트뤼도였다.
40여년 전 닉슨 대통령의 예언은 정확히 적중했다.
‘미래 총리’ 저스틴 트뤼도는 19일(현지시간) 실시된 캐나다 총선에서 총리 자리에 올랐다. 더구나 지난 10년간 집권한 보수당스티븐 하퍼(63) 총리를 완패시키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정치업적을 이뤄냈다. 43살의 중도진보 정치인 저스틴 트뤼도는 캐나다 역사상 두번째로 젊은 총리다.
캐나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일 새벽 3시 현재(캐나다 동부시간) 총 338개 하원 의석중 과반을 훨씬 넘는 185개 의석을 자유당이 승리해 트뤼도의 총리 취임이 확정됐다.
‘격식을 파괴할 것’이라는 40년 전 닉슨 대통령의 덕담 때문이었을까. 트뤼도는 자유분방한 10대와 20대를 보냈다.
트뤼도 부친은 최장기 자유당 당수이자 과거 17년간 총리를 지낸 인물. 트뤼도의 젊은 삶은 정치 명망가 가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번지점프 코치, 라디오 진행자 등 기분 내키는 대로 ,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그런 그가 정치판에 발을 들인 과정 또한 드라마틱했다.
일찌기 아버지의 정치후계자로 지목받았던 둘째 형이 지난 98년 눈사태로 생을 마감하자 그는 눈사태 안전 캠페인의 대변인으로 대중들 앞에 나선다. 그리고 2년 뒤 그의 부친이 82세 일기로 생을 마감했을 때 비가 오는 장례식장에서 절절히 읽어내린 그의 ‘사부곡’은 캐나다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정치적 가치를 발견한 자유당은 끈질긴 구애를 던졌고 마침내 지난 2008년 트뤼도는 자유당의 차기 기수의 꿈을 안고 입당한다.
잘생긴 외모, 청바지에 재킷차림과 매끈한 얼굴, 훨친한 그의 외모는 데뷔와 동시에 ‘팬덤’을 만들어냈다. 언론들은 제2의 ‘트뤼도 마니아’(1960년~70년대 트뤼도의 열광적인 팬을 가리키는 조어)라 불렀다. 정치 입문 4년 만인 지난 2013년 당수자리를 꿰찰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도를 지나친 솔직함과 거침없는 발언은 ‘경솔함’으로 치부되며 논란을 달고 살았다. 의원재직중에도 마리화나를 피웠고 우크라이나 사태 땐 러시아 하키팀이 올림픽에서 패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화가 나 군대를 파견했다 말하기도 했다. 그에게 늘 ‘준비가 안된’이라는 수식언이 따라 붙는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그의 맞수였던 하퍼 총리 역시 “그는 잘났다. 다만 준비가 안돼 있을 뿐이다”라며 끊임없는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했다. 하퍼총리와 보수당은 이번 총선의 유세기간을 역대 최장인 11주로 설정했다.
하퍼총리는 “연예인같은 인기가 선거기간이 길어지면 거품처럼 사라지고 자금력도 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퍼의 결정은 치명적 오판이었다. 선거 기간이 길어질수록 캐나다인들은 최근 유가하락으로 궁핍해진 경제상황에도 군사력강화·영국 왕실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보수당에 넌더리가 났다. 기존 정치에 대한 무력감과 피로만 쌓인 것이다.
트뤼도는 이런 민심을 파고들며 중산층 감세·부유층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실현을 비롯해 재정적자까지 감수한 사회기반시설투자(SOC) 등 과감한 일자리 정책공약을 쏟아냈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트뤼도 신임총리 당선자는 이날 “자유당은 바로 당신을 위해 투자할 것이며 지금처럼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시종’(Servants)이 아닌 국민을 존경하는 ‘
반면 ‘준비 안된 짧은 경력의 총리’를 걱정하는 시선도 여전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선거 승리자가 누가되든, 성장 모멘텀이 없는 경제 현실을 펼쳐보이면 승리 기쁨은 의외로 빨리 사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지용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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