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근한 기자] 경기 중반 살얼음판 승부, 두산은 그를 먼저 찾는다. 그는 위기 속에서 표정 없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과감히 내리 꽂고 상대를 제압한다. 그리고 묵묵히 마무리 투수에게 공을 넘긴다. 정상급 베테랑 셋업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올해 20살에 불과한 ‘겁 없는 막내’ 투수 함덕주(20)의 이야기다.
함덕주는 올 시즌 57경기 구원 등판해 6승 1패 2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 중이다. 팀 구원진 중 다승 1위, 홀드 2위에 위치했다. 올 시즌 불펜에서만 등판한 팀 투수 중 이닝 소화는 3위(47⅓이닝)다. 이제 두산 필승조에서 함덕주를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인터뷰 내내 수줍고 겸손했지만, 말 한 마디마다 자신감이 엿보였던 함덕주를 만나봤다.
↑ 두산 투수 함덕주는 수줍고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사진=김근한 기자 |
지난 2013년 두산에 입단한 함덕주는 올 시즌이 사실상 2년 차 시즌이다. 입단해인 2013년에는 3경기 등판으로 1군 분위기를 살짝 맛만 봤다. 본격적인 1군 경험을 쌓은 것은 지난 시즌 중반부터다. 함덕주는 지난해 31경기 등판 1승 2홀드 평균자책점 4.44로 가능성을 엿봤다.
올해는 스프링캠프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김태형 두산 감독이 스프링캠프 소화 후 올 시즌 가장 기대되는 투수로 함덕주와 김강률을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함덕주는 전반기 35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5.56으로 주춤했다. 스스로 꼽은 부진의 원인은 자만이었다. 함덕주는 “시즌 시작 전 공이 너무 좋아 자만한 것 같다. 어깨도 안 좋았다. 초반 성적이 안 나와 감독님께도 죄송했다”고 전반기 부진을 곱씹었다.
하지만 지난 6월 2군으로 내려간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함덕주는 “2군에 한 번 갔다 오니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 아픈 것도 낫고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가득염 코치님과 이상훈 코치님에게 투구 밸런스와 마음가짐에서 많은 조언을 받았다. 2군 경기에서도 변화구나 우타자 상대 연습을 부담 없이해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2군행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함덕주는 후반기 22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2.92로 안정감을 찾았다. 특히 전반기(22⅔이닝)보다 후반기(24⅔이닝)에서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도 탈삼진(25개⟶34개)과 볼넷(19개⟶15개), 피안타율(2할7푼8리⟶2할5리) 등 세부 수치에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필승조 함덕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살아난 함덕주는 마무리 이현승 앞을 책임지는 필승조가 됐다. 이제 2년 차인 함덕주에게 부담감은 없었을까.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씩씩했다.
“사실 지난 시즌에는 부담 없는 상황에서 편하게 던졌는데 올해는 중요한 순간 나가서 생각이 많아지긴 했다. 처음에는 나 때문에 지는 것 아닌가 싶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막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떻게 막아서 (이)현승 선배님한테 넘길까 구상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구속 증가도 함덕주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은 아니다. 마법 같이 갑자기 좋아졌다. 함덕주는 “빠른 공 구속이 140km 중반대 까지 갑자기 확 올랐다. 딱히 더 세게 던지는 것 없이 똑같이 하는데 저절로 좋아졌다. 타자들도 빠른 공에 헛스윙 하니깐 더 자신감을 가지고 던진다”고 말했다.
필승조인 만큼 중요한 순간에서 상대 중심 타선과 맞부딪힌다. 특히 함덕주에게 주목할 만한 기록은 NC 에릭 테임즈와의 숭부다. 함덕주는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강타자 테임즈(7타수 1안타 4삼진)에 강했다. 함덕주는 “기사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는데 그 다음에도 만나서 삼진을 잡아 더 자신감이 생겼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만난다면 똑같이 삼진을 잡겠다”고 다짐했다.
당찬 대답은 계속 됐다. 함덕주는 “특히 선두 삼성이랑 대결할 때 강한 좌타자들과 승부에서 이기면 기분이 좋았다. 삼성과 NC 좌타자들은 꼭 잡고 싶다”고 강조했다.
꾹 눌렀던 감정 표출도 최근 조금씩 나온다. 함덕주는 마운드 위에서 표정 변화가 없는 편이다. 사실 떨리는 마음을 감췄다. “솔직히 떨리긴 하는데 투수라면 표정에서 티가 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최근에는 삼진을 잡고 나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나온다. 이런 거는 괜찮지 않나(웃음).”
↑ 두산 투수 함덕주는 필승조로 뛰면서도 더욱 성장하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
가벼운 이야기로 주제를 돌렸다. 함덕주는 경기 전 아이스박스를 나르는 등 팀 투수진 막내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 막내로서 힘든 점이 있냐는 질문에 함덕주는 격한 손사래를 쳤다. “막내라서 힘든 점은 없다. 항상 형들이 잘 챙겨준다. 특히 룸메이트인 유희관 선배님이 편하게 대해준다. 사실 잠이 많은 편인데 잠도 안 깨우고 잔심부름도 안 시킨다(웃음).”
막내라서 더 배우고 싶은 욕심도 많다. 사실 함덕주는 선발 투수에 대한 욕심이 있다. 김 감독 역시 함덕주를 장기적으로 선발 자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함덕주는 다승왕을 노리고 있는 유희관을 롤모델로 꼽았다. 함덕주는 “유희관 선배님처럼만 던지고 싶다. 마운드에서 여유가 대단하다. 나는 그저 세게만 던지려고 하는데 유희관 선배님의 타자들과 심리전을 배우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선배 투수들에게 배우고 있는 점도 한 가지씩 꼽았다. 함덕주는 유희관에게는 볼배합, 장원준에게는 슬라이더, 이현승에게는 멘탈적인 면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이 다 합쳐진 선발 투수 함덕주는 어떤 선수가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팀 내에서 자신의 외모 순위에 대해 절대 상위권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 함덕주는 자신의 별명에 대해서도 수줍음을 내비쳤다. “불펜이라서 그런지 최근 형들이 선동열 선배님을 본 따 ‘함동열’이라고 부른다. 기분은 좋은데 대선배님이라 부담이 된다. 솔직히 그냥 아무 별명 없이 무색의 야구로 지금처럼만 하고 싶다”
무색(色)의 야구. 함덕주가 말한 의미는 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의미로 더 함덕주에 어울리는 단어였다. 막힐 색(塞)과 두려워 할 색(㱇)을 넣어본다면 그렇다. 두려워하거나 막히는 것이 없는 야구는 과감한 투구의 함덕주를 잘 설명한다.
함덕주가 꿈꾸는 첫 포스트시즌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포스트시즌을 생각하면 떨리지만 막상 가면 재밌게 더 좋은 공을 던질 것 같다. 중요한 순간 내가 마운드에 올라가 상대 중심 타선을 이겨내고 팀이 역전해서 이기는 그림을 꿈꾼다. 좋은 생각만 하고 있다. 첫 포스트시즌에서 우승하면 더 좋지 않겠나(웃음)”
↑ 투수 함덕주는 첫 포스트시즌에서 우승을 꿈꾸고 있다. 사진=김근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