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제 삶은 뮤지컬 말고 다른 것이 없어요. 현재 몸매 관리를 하는 것도 공연 때문이고, 뮤지컬을 보는 이유도 공연 때문이고…제 인생에 뮤지컬이 없었으면 어땠을지 상상도 안 가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빈민의 딸 마드리드를 연기하며 호평을 받았던 배우 윤공주의 ‘인생배역’이 또 한 번 업그레이드 됐다. 뮤지컬 ‘아리랑’에서 한 많은 여인 방수국을 연기하면서 전보다 더 깊어진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울리고 또 울리고 있는 것이다.
“역대 연기했던 역할 중에 이런 인물이 있을까 싶어요. 나라를 잃고 사랑하는 이도 잃고, 최악의 상황들이 겹치면서 상처가 쌓여가는 방수국을 연기하는 것은 정말 가슴이 아프고 힘들지만, 매일매일 연기하고 싶을 정도로 저는 방수국이 정말 좋아요.”
‘아리랑’에서 방수국은 그 이름처럼 꽃과 같은 인물이다. 극중 방수국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 차득보와의 행복한 나날을 꿈꾸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억센 운명의 소용돌이 속 사랑하는 이들을 잃게 되는 조선의 연인이다. 미선소(米選所)에서 일을 하다 일제의 앞잡이인 조선인 감독관에게 겁탈을 당하고, 사랑이라고 말하는 양치성의 소유욕과 농간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으며, 원치 않은 임신이었지만 낳자마자 아이를 죽음을 준비하는 등 한 많고 서러운 인생을 견뎌낸다. 고난 많은 방수국의 일생은 차득보를 구하다 그의 품에서 눈을 감게 된다.
↑ 사진=이현지 기자 |
공연마다 안정적인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자신의 맞춤옷처럼 역할을 소화했던 윤공주였지만, 방수국을 연기하면서 표현력과 감성이 더욱 풍부해졌다.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답답한 듯 마른 가슴을 치는 윤공주는 단순하게 ‘슬프다’라는 감정을 넘어선 한의 감정을 전해주며 관객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사실 ‘아리랑’이라는 작품의 제의가 들어왔을 때 방수국이라는 인물이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어요. 배역이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고선웅 연출님에 김성녀 선생님까지, 순수하게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출연하기로 결정했죠. 그리고 낭독회 전 날, ‘드림걸즈’ 분장실에서 대본을 쭉 읽어봤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너무 마음이 아팠고, 그냥 수국이라는 인물이 내게 다가온 것 같았어요. 결국 낭독회날 우느라고 대사를 제대로 못했어요. 연습을 할수록 ‘아리랑’이라는 작품 수국의 의미가 점점 커졌고, 이제는 ‘내가 만약 이 작품을 어땠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어요. 배우로서 많이 깨달았고, 덕분에 사람 윤공주가 배우로서 깨어날 수 있었던 같아요. 제게 준 기회에 무척 감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사랑에 빠져들고 있어요.”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던 윤공주는 ‘아리랑’에 대해 “위로 한 단계 뿐 아니라 깊이도 깊어질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윤공주에게 있어 ‘아리랑’은 운명 그 자체였다.
“‘아리랑’을 하게 됐을 때 연기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기 보다는 그저 대본에 충실했어요. 뭘 준비하는 것 자체가 꾸미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봤을 때 중요한 것은 연기의 스킬 보다는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그 상황에 진짜로 녹아들고 그 상황을 이해하고 느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아리랑’은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의 분량은 무려 12권. 작품을 위해 크게 준비한 것이 없다고 고백한 윤공주는 대신 원작 소설을 읽는데 중점을 주었다.
“처음에는 12권이나 되니 부담이 되기는 했었죠. 하지만 읽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정말 많은 공부가 됐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알게 됐어요. 책을 읽으면서 극중 인물들의 분노와 감정들을 느꼈고, 12권까지 읽고 정말 읽기 잘했다 싶었죠. 책을 안 읽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2001년 뮤지컬 ‘가스펠’ 앙상블로 데뷔한 윤공주는 올해로 무려 14년차 배우이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왔던 윤공주이지만, 그녀를 대표하는 작품이나 캐릭터를 하나 꼽기 어렵다. 이는 하얀 도화지처럼 정해진 색깔이 없다는 뜻이고, 또 다른 뜻으로는 앞서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인생배역’을 경신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들을 수월하게 소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품 선정의 기준은 따로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저 성격과 연관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장르 보다는 전혀 상반된 장르에 끌리거든요. 올해 만해도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혁명가를 했으니 ‘드림걸즈’를 통해 디나라는 예쁜 여자를 연기하고 싶었고, 한창 하다 보니 한국적인 것을 하고 싶더라고요. 배우인데 어느 하나의 이미지로 국한 되는 것보다 하얀 도화지로 남고 싶어요.”
하얀 도화지로 남고 싶다고 말한 윤공주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하다.
“사실 열심히 안 하는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내 부족함을 알기 위해서 연습하고 하는 것인데…저는 연습이 재밌어요. 하다보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계속 노력하니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다 보니 발전한 부분이 있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꾸준하게 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있다가 없어진 사람도 있고, 같이 활동을 하다가 없어진 사람도 있는데 살려면 해야죠.(웃음)”
↑ 사진=이현지 기자 |
연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 윤공주는 연습의 과정도, 그리고 그 힘든 관리도 즐겁다고 했다. 철저하게 관리하며 사는 것이 답답하기도 할 텐데, 오히려 그녀는 “운동할 때 행복하고 살 빠진 내 모습 보면 좋고, 자기관리를 한다는 것이 재미있는 놀이 같은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숨길 수 없는 연기를 애정과 열정이 있었다.
“저는 연기가 무척 하고 싶어요. 이 세상을 살면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요. 뮤지컬에서 좋은 역할을 원 없이 하고 있어서 행복해요. 항상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제 삶은 뮤지컬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몸매 관리를 하는 것도 공연 때문이고 다른 작품을 보는 것도 공연 때문이고, 노래 레슨을 받는 이유도 공연 때문이에요. 최근에 노래레슨을 받고 있는데,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왠지 모든 장르를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할까.(웃음)”
욕심이 많기에 현재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가는 윤공주. 그런 그녀에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느냐고 물어보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배우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 돼야 무대에서도 좋은 배우일 수 있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물들 수밖에 없지만, 무대에서 만큼은 항상 순수했으면 좋겠어요. 진실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끝까지 남아 있는 배우, 항상 발전하는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