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의 다인실(多人室)마다 간병가족과 문병객들로 북적이는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다. 17일 기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162명 중 가족 또는 방문객은 58명이었다. 전체 환자 중 3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삼성서울병원에 병문안을 다녀온 일가친척 5명이 메르스 확진자로 판정받아 1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4명이 격리치료를 받게된 것이 가족감염의 대표적인 사례다.
중앙메르스대책본부가 지난 14일 확진자로 발표한 139번(64·여) 환자는 지난달 27~2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체류했다. 이때 슈퍼 전파자인 14번 환자(35·남)와 같은 공간에 체류하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139번 환자는 1~3차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4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 확진자로 분류됐다. 139번 환자와 함께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큰아들(36)도 메르스에 감염돼 55번 환자가 됐다. 55번 환자의 남동생(35)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지난 10일 격리 해제됐다.
139번 환자의 남편이자 55번 환자의 아버지는 결국 간암과 방광암으로 사망했다. 가족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55번 환자의 아버지를 함께 병문안했던 그의 외삼촌(61·81번 환자), 이모(56·116번 환자), 이모부(56·125번 환자) 모두 각각 지난 7일, 11일, 1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55번 환자의 외삼촌은 끝내 지난 14일 부산에서 숨졌다. 가족들이 격리된데다 전염병으로 숨진 경우 24시간 내에 시신을 화장하도록 한 규정이 있어 보건당국은 81번 환자를 재대로 된 장례 절차 없이 곧바로 화장했다.
가족 간 감염사례는 더 있다. 3번 환자(76·남)는 국내 메르스 첫 환자와 함께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메르스에 감염됐고 지난 4일 사망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그를 간병하던 딸(46)도 이때 메르스에 감염돼 4번 환자가 됐다. 아버지(3번)를 문병왔던 아들(44)도 문병 후 증세가 나타났다. 중국으로 출국한 그는 증세 발현으로 중국에서 격리돼 10번 환자가 됐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국내 첫 임신부 메르스 감염자가 된 109번 환자(40)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있던 산모로 지난달 27일 자신을 돌보다 급체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당시 응급실엔 ‘슈퍼 전파자’인 14번 환자(35·남)가 있었다. 이때 14번 환자에 노출된 남편, 어머니, 아버지 모두가 메르스 감염자가 됐다.
WHO(세계보건기구)도 17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주범으로 밀도높은 병실과 응급실, 문병가는 습관을 꼽았다. 좋게 말하면 ‘효도문화’, 안좋게 말하면 ‘도장찍기 인사’ 또는 ‘체면치레 잔재’라고 볼 수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감염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 감염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멀쩡한 가족과 친지, 친구들까지 감염병에 걸리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선진국의 입원실을 가보면 병동이 절처럼 조용하다. 기본적으로 다인실이라고 해도 고작해야 4인실이고 환자와 환자 사이의 침상 간격이 매우 넓다. 병실에는 환자와 의료진이 아니면 상주할 수없다. 병실 환자들도 각자의 침대에 붙어있는 모니터를 통해 이어폰으로 TV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지 옆 환자와 각별하게 지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병실은 복잡한 시장통 같은 모습이다. 다인실 기본이 6인실이지만 환자 수만큼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해 사실상 12인실이다. 보통 다인실 크기가 약 50㎡(약15평)쯤 되니 12명이 상주한다고 볼때 1인당 1평(3.3㎡)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평균 사람당 간격이 2m 안쪽이어서 감염병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앞뒤좌우 모든 환자가 비말의 사정권안에 있는 셈이다.
복지부가 전국 415개 응급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 중증응급환자가 응급실에서 수술실이나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기까지 평균 대기 시간은 6.3시간이었다. 주요 대학병원은 과밀화지수가 150%에 달해 대기시간이 훨씬 더 길어 1박2일을 응급실에서 보내는 경우도 많다
장여구 인제대 서울백병원 응급실장은 “선진국의 응급실은 대부분 1인 1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천 칸막이로 침상을 구분해 감염에 취약하다”며 “환자는 많고 의료진과 병상은 턱없이 부족한 응급실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바이러스 퇴치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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